司馬遷의 史記

12. 司馬遷의 史記(12)

동천 2010. 2. 9. 19:34
司馬遷의 史記(12)

秦나라 滅亡

이 일이 있은 뒤 어떤 사람이 상림원을 지나다가 皇帝가 쏜 화살에 맞아 죽은 사건을 기화로,趙高는 皇帝를 협박하여 皇帝의 居處를 함양에서 동남쪽 8리나 떨어진 望夷宮으로 옮기도록 조치한다.

그런 다음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을 하나하나 죄를 씌워 죽이니 그의 말에 반대하는 자는 한사람도 없게 된다.

그 뒤에 趙高는 2세황제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을 秦나라 王으로 모셨는데......자영은 간신 조고를 죽이기 위해 황제 즉위절차를 의논하고자 하니 입궁하라는 명을 내려 조고를 불러 들이는데......자영은 입궁하는 조고를 주살하고 만다.

한편, 劉邦은 秦나라軍을 무찔러 마침내 무관을 돌파하고 패상까지 진출하여 秦王에게 항복을 강요했다.

하여,
秦王 자영은 즉위한 지 46일 째,서한의 유방앞에 백마가 끄는 뚜껑 없는 수레를 타고 목에 동아줄을 걸고 투항하니 영고성쇠의 한가닥 꿈을 여기서 보는듯 하다.

이때가 B.C. 221년 진시황이 통일한 지 3대 16년째 되는 B.C. 206년 10월의 일이다.

沛公 劉邦은 함양에 들어와서 궁정과 창고를 봉인하고 일단 군사들을 패상으로 철수시켰다.

제후들 맹주인 項羽가 함양에 들어 온 것은 이로부터 한 달쯤 뒤의 일이었다.

秦나라가 멸망한 뒤 관중은 옹왕,색왕,책왕으로 삼분되었고, 이를 삼진이라 이른다.
項羽는 西楚의 覇王이 되고, 天下를 18로 나누어 제후를 각지의 왕으로 봉하니 秦나라는 이렇게 멸망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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