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14) 世界 最初의 農民봉기 이 "陳勝"이 진나라 2세 황제 때, 농민 900名과 함께 징용되어 만리장성 경비를 맡기 위해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장마가 들어 기한내에 도저히 목적지까지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당시의 법은 어찌나 엄하였던지 만약 기한내 가지 못하게 되면 바로 처형이었다. 하여, "陳勝"은 동료인 "오광"과 함께 진나라에 반기를 들기로 맹약하고는 병사들의 불만을 선동하고, 미신을 이용하여 병사들을 내편으로 포섭해 가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오광은 징병관에게 약을 올려 화나게 하여 그가 검을 뽑았는데, 이것을 뺏어 징병관을 죽여버렸다. 그것을 본 병사들은 술렁그렸다. "陳勝"은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하나, 秦나라와 싸우는 일이다. 우리들의 나라를 우리들의 손으로 일으켜야 한다. 王后將相이 따로 있는가. 모두가 같은 인간, 王도 될 수 있고 貴族,將軍,宰相도 될 수 있다. 이리 하여 B.C.209년 7월 , "陳勝"과 "오광"이 900명의 농민병을 이끌고 기현에서 거병하게 되니, 秦나라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던 각처의 농민들은 앞을 다투어 이에 호응하여 陳나라에 입성할 때는 그 수가 수만명에 이르렀고 "陳勝"은 스스로 王이 되어 국호를 "장초"라 정하고 진나라에 대항하지만, 진승이 왕위에 있었던 것은 겨우 6개월 정도에 불과했다. 이를 계기로, 項良은 조카 項羽를 부장으로 삼아 회계군에서 군대를 일어키고, 四水의 亭長이던 "劉邦"은 서주의 沛(패)지방에서 붉은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게 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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