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11) B.C. 208년(2세황제 3년), 趙高가 승상이 되고 李斯가 죽임을 당한 것은 이 해 겨울의 일이었다. 秦나라 장수 장한 등이 거느리는 군사는 黃河의 북쪽 거록을 포위했으나 楚나라의 상장군 項羽의 공격을 받아 포위망이 무너졌다. 장한 군은 여름이 올때까지 패배를 거듭하고 있어 皇帝는 사자를 보내 패전에 대한 책임을 추궁했다. 장한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사마흔을 함양에 보내어 지시를 받도록 하였으나, 趙高는 그를 상대하지 않고 만나 주지도 않았다.몰래 전선으로 도망쳐 나온 사마흔은 장한에게 보고했다. 趙高가 나랏일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將軍께서 功을 못세우실 경우는 물론이요, 功을 세우신 때라도 후에 처벌당하실 것입니다. 그 무렵, 項羽가 秦나라 군을 급습하여 장수 왕리가 사로잡혀 敗色이 짙어지자 장한은 군사를 이끌고 項羽에 투항하고 만다. 指鹿爲馬 이런 渦中에 趙高는 벌써부터 쿠테타를 기도하고 있었는데..... 臣下들이 자신의 뜻에 동조할지 확신할 수가 없어 이를 타진하는 하나의 計略을 생각해 냈다. B.C.206년, 8월의 어느날이었다. 趙高는 뭇 신하들이 朝賀를 올리는 틈을 이용해 사슴 한 마리를 끌고 들어와 입을 열었다. 小臣이 좋은 말 한 마리를 폐하께 바치려고 합니다.한번 보십시요.라고 말했다. 皇帝는 이상히 여겨, 승상은 말씀을 잘못하셨소.이건 사슴이오. 말이 아닙니다. 라면서 곁에 있는 가신들을 둘러보았다. 주위 신하들은 趙高의 권력을 두려워하던 참이라 바른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皇帝는 주위 臣下들의 의견이 분분하자 자신이 무슨 病에라도 걸렸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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