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8) 李斯는 조작된 반역죄로 趙高에 의하여 四枝가 찢기는 오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마쳤지만, 李斯 또한 同門修學한 韓非子를 아무 罪도 없이 毒酒로 죽였다. 李斯와 韓非子는 荀子의 제자로 同門修學하였다. 韓非子의 思想은 한마디로 철저한 "法의 政治"였다. 그는 刑名學과 法律學의 大家로써, 그의 才能은 李斯 보다 훨씬 뛰어났고. 李斯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韓非子는 심한 말더듬이였음으로 말로써 자신의 생각을 1/100도 전달하지 못하여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전달했다. 그 글을 모아 엮은 것이 바로 오늘날 전해오는 "韓非子"이다.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情"이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 法"에 의해 경영 되어야 하고, 才能만이 관리를 등용한 데 기준이 될 뿐이며, 功을 세우면 미천한 자라 할지라도 상을 받고, 罪를 지으면 王의 친척이라 할지라도 罰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상필벌을 바탕으로 한 韓非子의 法家思想은 秦始皇의 성격과 꼭 맞아 떨어 쪘고, 그 중에서도 儒者는 文으로써 世上을 어지럽히고,俠者는 武로써 世上을 어지럽힌다. 그런데도 君主는 이들을 한결같이 예우하니, 이야말로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까닭이다. 라는 구절에 秦始皇은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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