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虞 姬
項羽는 鴻門宴이 있은 며칠 뒤 군사를 몰아 咸陽으로 들어갔다. 楚覇王 項羽는 秦나라 主力 군사들과 싸우면서 악전고투를 거듭해 오는 동안에 거칠어지고 뒤틀린 정서는 처음부터 관용이나 연민과는 멀었다. 項羽는 항복한 秦나라의 마지막 임금 자영(子瓔)부터 끌어내 죽이는 것을 咸陽에 들어온 뒤의 첫 일로 삼았고, 그 다음으로 秦나라의 벼슬아치들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죽였다. 그러고는 財貨와 보물뿐만 아니라 궁녀들까지도 모두 거두어 들였고, 將卒들은 닥치는 대로 백성들을 약탈하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대드는 백성들은 거침없이 죽였다.
음릉(陰陵)땅 우자기(虞子期)의 딸 절세가인 "우희(虞姬)"를 얻은 것도 이때의 일이다.
약탈로 咸陽城 안이 거덜 나자, 項羽의 將卒들은 城밖 멀리 아방궁으로 밀어 닥쳐 하루종일 뒤져도 별로 나오는 것이 없자 虞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項羽에게 물었다.
백성들의 재물을 쥐어짜고 그 피와 땀으로 지은 아방궁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태워 버려라!
그렇게 하여 아방궁은 그 뒤 석달 동안이나 타올랐다 한다. 여산에 있는 시황제의 陵墓는 어찌했으면 좋겠습니까? 파 해쳐라!
이렇게 되자 새롭고 살기 좋은 세상을 기대하고 있던 秦나라 사람들은 그같은 項羽에 크게 실망했다. 項羽는 그런 民心에는 아랑곳 하지않고 동쪽으로 물러나 鴻門에 자리 잡았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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