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

33. 司馬遷의 史記(33)

동천 2010. 2. 12. 19:41
司馬遷의 史記(33)

劉 邦,東쪽을 바라보다

劉邦도 자신의 영지를 향해 출발했다.
이때 項羽는 劉邦에게 병력 3만을 허락했는데 지원한 군사들은 그의 관동의 동쪽 병사들이었다.
劉邦은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계곡지대의 식중에서 부터 그들이 지난 뒤에 잔도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는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또 한가지는 다리를 없애버림으로써 동쪽으로 돌아갈 뜻이 조금도 없음을 項羽에게 알리려는 張良의 計策이 숨어 있다.

드디어 한나라군은 수도인 남정에 도착하였으나, 오는 도중에 도망병이 많았고, 남아 있는 병사들도 향수에 사로잡혀 제 고향의 민요를 흥얼거리는 형편이었다.


이때 項羽 진영을 벗어나 자기 진영으로 귀순한 韓信이 劉邦에게 건의했다.
項羽는 공을 세운 여러장수를 각지의 王으로 봉하였습니다만 우리 王에 대해서만은 이런 벽지에 몰아넣어 유배와 다름없는 대접을 하고 있습니다.

장교나 병사들이 모두 동쪽지방 출신들이기 때문에 밤낮으로 고향 생각뿐입니다.
이들의 절박한 망향심을 요령껏 이용하면 어떤 큰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天下의 大勢가 결정되고 인심이 안정된 뒤에는 때가 이미 늦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군사를 동쪽으로 돌려 天下의 覇權을 놓고 다투어야 합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사記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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