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33)![]() 이때 項羽는 劉邦에게 병력 3만을 허락했는데 지원한 군사들은 그의 관동의 동쪽 병사들이었다. 劉邦은 한중으로 들어가면서 계곡지대의 식중에서 부터 그들이 지난 뒤에 잔도를 모두 불태워버렸다. 이는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또 한가지는 다리를 없애버림으로써 동쪽으로 돌아갈 뜻이 조금도 없음을 項羽에게 알리려는 張良의 計策이 숨어 있다. 드디어 한나라군은 수도인 남정에 도착하였으나, 오는 도중에 도망병이 많았고, 남아 있는 병사들도 향수에 사로잡혀 제 고향의 민요를 흥얼거리는 형편이었다. ![]() 이때 項羽 진영을 벗어나 자기 진영으로 귀순한 韓信이 劉邦에게 건의했다. 장교나 병사들이 모두 동쪽지방 출신들이기 때문에 밤낮으로 고향 생각뿐입니다. 이들의 절박한 망향심을 요령껏 이용하면 어떤 큰 일이라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天下의 大勢가 결정되고 인심이 안정된 뒤에는 때가 이미 늦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군사를 동쪽으로 돌려 天下의 覇權을 놓고 다투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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