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

69.■ 韓 信 의 最 後 (69)

동천 2010. 2. 17. 12:43



■ 韓 信 의 最 後

소하는 韓信의 才能을 알아보고 劉邦에게 천거하여 大將軍이 되어
趙나라를 정벌하고 이어 齊나라 정벌하기 위하여 進擊中에 있는데
劉邦의 謀士 "역이기"가 이미 齊나라의 항복을 받아 내었으니
韓信은 軍隊를 철수할 것을 傳하였다.
이에 韓信의 謀士 괴철이 말했다.

將軍께서는 軍隊를 이끌고 趙나라 50여성을 빼앗았을 뿐인데
"역이기"는 세치 혀로 齊나라 70餘 城을 함락시켰으니
이는 將軍의 공적이 더 작은 게 아닙니까?

그리고 漢王은 이미 將軍에게 齊나라를 공격하라고 하여 놓고 다시
"역이기"에게 항복을 권유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道理가 아닙니다.
그냥 齊나라를 攻擊함이 좋겠습니다.


하여 "韓信"은 謀士 "괴철"의 말에 따라 계속 進擊하여 항복 받은 齊나라를
침공하니 齊나라 王은 劉邦이 보낸 사신 "역이기" 가 自己를 속였다하여
삶아 죽이고 만다.

韓信은 이어 楚나라를 정벌하고,"劉邦"을 도와 해하 決戰에서 項羽를
자결케 함으로써 劉邦은 天下를 얻어 皇帝가 되었고
韓信을 楚王으로 封하게 된다.

"劉邦"은 원래 韓信의
才能을 두려워 하였으며
그를 疑心하고 있던 차에
韓信 의 수하에 있던 어떤 자가
韓信이 모반하려 한다고 밀고하자
劉邦은 陳平의 計策에 따라
韓信을 잡기위하여 "운몽"으로
행차하여 天下의 제후를 소집하게 된다.

韓信 역시 운몽에 가지않을 수 없어 당시 自身에게 몸을 의지하고
있던 項羽의 將帥 "종리매"의 목을 들고 劉邦에게 謝罪를 하러 갔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