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106.統制不能狀態의 北傀軍 /후1.韓國戰爭秘史 후편 연재

동천 2011. 8. 2. 21:42

■106.統制不能狀態의 北傀軍

10月 16日,
統制 不能狀態에 빠져
"계획적 퇴각"이 不可能한 狀況에서
평양을 탈출한 김일성이 처음 머물렀던 곳은
묘향산맥 기슭의 험준한 산악 지대인 평안남도 덕천으로
最高司令部와 함께 숨어들어, 이곳에서 며칠 머물며 戰爭을
指揮하게 된다.

덕천에 도착한 김일성은
먼저 UN軍의 배후를 攻擊하여 進擊을 차단할 수 있도록 "第2 戰線"을
形成하라고 긴급 指示하고, 後方 總司領官에 최 현을 任命하게 된다.

그는 또 軍事 指揮官들을
北韓 北部와 만주로 파견하여
예비 부대와 새로운 사단을 편성하도록 命令하고.
다시 10月19日 어둠을 틈타 정유령산맥의 험준한 山岳地帶에
자리잡은日帝 때의 有名한 금광 지역인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으로
들어가 이곳의 한 농가에서 中共軍 司領官 팽덕회를 극비리에 만나게 된다.

팽덕회가 國境을 넘은 것은 김일성이 이곳에 도착하기 하루 전인
10月18日 밤이었다.

김일성·팽덕회 會談은 10月20日 午前 9時부터 열려 12時까지
그의 3 時間 동안 進行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팽덕회는 이 자리에서
中共軍이 이미 10月19日 밤 中國地域 세 方面에서 압록강을 건너기
始作하여 北韓으로 進擊하고 있다는 事實을 알렸다.

☞會談 重要部分을 발췌하면
김일성 : 感謝합니다.
情勢가 매우 긴박합니다.
中共 中央의 決定과 計劃을 먼저 이야기하십시오.

팽덕회 : 우리 부대는
10月19日 밤
안동·장전·하구·즙안
等地에서 進擊하고 있습니다.
...............중 략............


팽덕회와의 會談에서
事實上 作戰權을 넘겨준 김일성은
10月25日까지 대유동에 머무르며 作戰會議를 주재하다가

* 10月25日 밤 평안북도 창성으로 ,
* 11月3日까지 창성과 유평을 오가다가,
* 11月4日부터 압록강을 따라 北上을 始作하여
* 11月8日 최장의 은신처요 마지막 근거지었던 고산진 等地로
移動하면서 주로 터널·갱도나 農家에 은신하였다.

問 ;그게 언제부터인가?
答 ; 38線 너머로 도망쳐올 때부터였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後1.韓國戰爭秘史 후편 연재


2009년 6월에  한국전쟁비사를 연재하기 시작하여
만 5년이 되는 바로 9월 3일 오늘 75회로 끝낸바 있다.

韓國戰爭은 북괴가 50年 6月 25日 南侵하여
53年 7月 27日 정전되기까지 3年 1個月 2日 間의
戰爭期間이었지만 연재한 내용은 仁川 上陸作戰의 성공으로
反擊을 개시하여 38線을 넘어 北進統一의 꿈을 안고 앞록강까지
진격하였다가 中共軍이 不法 介入하여 또다시 서울을 中共軍에
내어주고 혹한과 싸우며 1,4 後退라는 이름을 남기는 데까지
언급하고 休戰會談을 끝으로 연재를 끝내었으니
韓國戰爭史의 1/3만 언급된 셈이다.

게임으로 치면
前반전만 보고 後반전은 생략된 셈이며,
군사전문가인 어르신들 입장에서 보면 膠着된 戰線에서
한치의 땅이라도 더 뺏으려는 高地戰을 왜 빼 먹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전쟁 당사국의 의지가 아닌 전쟁 지원국의 정책에 의한
휴전회담 진행과정과 내환 수습책으로 진행되는 후방지역작전 등을
생략하여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
생략하였던 韓國戰爭秘史를 후편을 연재하고자 하니
부족한 점 많을 것이나 지도편달과 성원 바랍니다.

연재는
포로구출작전부터 시작하겠으며
연계목적상 몇 페이지는 전편과 중복됨을 첨언합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