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108.捕虜를 救出하라!

동천 2011. 8. 3. 16:48

 

 

■108.捕虜를 救出하라

 

10월 20일 평양 入城과 때를 같이하여 맥아더 將軍은
美 8 軍 과 第 10 軍團을 한반도의 허리부분에서 연결시켜
北傀의 主力을 포위 섬멸하고 要人들을 사로잡는 同時에
아군 포로들을 구출한다는 구상 하에

당시 U N 軍 總 司令部의 豫備로 김포에 駐屯하고 있던
美 第187 空輸聯隊 兵力 約 2,800餘 名을
10月 20日 02;30分에 심야의 적막을 깨뜨리고
C-47機 等 수송기 113대에 分乘하여 평양 북쪽 약 48km지점의
肅 川과 順 川 一帶에 이날 14;00時에 미 제24사단은 숙천에,
도자아스 전차대대에 탑승한 국군 제12연대는 순천에
기습적인 수직포위를 감행하였으나,

맥아더 원수의
예상과는 달리
北傀의 수뇌부와
主力은 空輸作戰
개시에 앞서
10月12日에
평양을 버리고
탈주하였으며
美軍과 國軍 捕虜들도
作戰開始 以前에 北으로 끌려가 救出하지 못하였고
3,818名의 捕虜만을 잡고 作戰은 終了되고만다.

이무렵 순천을 점령한 제 6사단 장병들은
임부택 대령이 지휘하는 제 7연대가
청천강 근처의 价川과 熙川으로 진격해 가고 있었는데
사단 정보참모 柳楊洙 소령이 급리 사단장에게 하는 것이었다.
[순천 북쪽,철도 터널 속에 학살당한 미군 포로들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살된지 얼마 안되는 것 같습니다]


6사단장 김 종오 장군은 미 고문관 어니스트 대령을 대동하고
현장으로 달려갔던 바, 200 여명의 미군 포로들이
무참이 학살된 채 터미널 속에 쌓여 있었다.

사단장은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시체들을 헤치며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생존자를 20 여명 차아 내어 즉각 후송 시켰다.

포로들은 모두가 굶주려서 뼈만 앙상했고 추위가 다가오는 데도
다 해지고 더러운 옷을 입혀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결국 이 공수작전의 실패는 이름 모를 이의 염원에 국가도 UN도
답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拉北의 慘劇은 忘却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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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