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法家들] 齊나라의 國祖인 姜太公의 王道는 官子에 이르러 覇道가 되고, 晏子에 이르러 富國强兵策이 되었다가, 다시 田氏에 이르러 司馬法이 되어 점점 그 Scale이 작아졌지만, 그래도 田氏는 司馬法에 依해 賢明한 人士를 尊敬하고 國王도 學文과 眞理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아량을 베풀었던 것이다. 司馬穰苴 가 살던 時期는 바야흐로 戰國의 渾亂이 幕을 올리려고 하던 春秋時代였다. 大聖 孔子가 王道政治의 큰 뜻을 품고 齊나라에 就官運動을 하러 왔을 때 晏子가 宰相으로 있었다. 齊王의 親試에 양저는 합격하고 孔子는 낙제했다. 만일 이때 穰苴를 登龍하지 않고 孔子를 등용했더라면 과연 齊나라의 運命은 어떻게 되었을가 하는 問題는 매우 興味있는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과연 晉.燕 두 나라의 侵入을 막아내고 繁盛할 수 있었을가? 그리하여 齊王의 子孫 姜氏들은 대대로 安全히 王位를 繼承할 수 있었을가? 모르면 몰라도 적어도 孔子의 子孫들은 齊나라를 송두리째 빼앗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