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法家들] 孟子도 鄒나라에서 찾아와 齊宣王 을 만나 면접을보았으나 등용되지 못하여 떠난 일이 있다. 제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묘한 정책의 하나는 학자를 우대하면서도 관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晏子의 發案으로 공자와 같이 덕망 높은 사람을 적으로 만든다면 정신적으로 국가의 큰 손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의 왕도정치는 제나라 국책에 위배되기 때문에 물질적으로는 후대를 하지만 권력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뒤에 맹자가 다시 찾아와 왕과의 면접에서 <인의>의 정치를 주장하였지만, 선왕에게는 馬耳東風格이었다. 맹자도 공자와 마찬가지로 낙제생이 되고 말았다. <사마법>을 응용하고 있는 제 나라에서는 맹자를 대신과 같은 대우를 했지만, 그의 의견은 하나도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맹자는 극진한 우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박차고 쓸쓸한 나그네의가 되었던 것이다. 맹자가 떠나는 것을 끝까지 왕은 만류하려 했지만, 이는 공자가 떠날 때에도 쓴 상투적인 수단에 불과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