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 法

■ 33.司馬穰苴

동천 2011. 11. 23. 09:04
[兵法家들]


■ 33.司馬穰苴

落第生인 孔子는
司馬穰苴의 찬란한 成功과는 달리 齊나라에서 登龍되지
못하자 여러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그를 採用해 주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孔子는 가는 곳마다 面接에서 落第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 孔子는 서글픈 流浪을 繼續하면서
저 너른 벌판에
定處도 없이
彷徨하는 이 몸은
소도 범도 아닌
꼬리 긴 여우
여우는 그래도
저 풀숲 그 속에
편히 쉴 집이 있거니.


이렇게
詩經 大雅篇의 <何草不黃>의 한 句節을 읊조렸을 것이다.


반면에
사마양저에 의해 나라의 기틀이 닦인 뒤로
전쟁 경기가 계속되어 제나라 수도에는 날이 갈 수록
풍기는 점차 문란하여 강태공이 심어 놓은 質朴과 剛健의
기풍은 간 데 없고 사치와 방탕의 풍조가 휩쓸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와는 대조적으로
<사마법>의 정신은 전씨의 왕실에 상속되어
대대로 국왕들은 학자를 우대하고 학술을 장려하여

田騈,孫殯,王孫賈,田單,魯仲連 같은
一代의 學者,兵法家,政治家 等 2千 餘名이
稷山 아래 모여 前無後無한 學界의 장관을 떨쳤다.

- 參考文軒 : 世界兵法大全集. 史記, 列局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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