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 史

■ 騶 己 ( 추 기 )

동천 2015. 12. 18. 10:39


■ 騶 己 ( 추 기 )

기원전 551年頃,
齊 나라 威王은 戰國時代의 亂歲에 36年간을 임금자리에 있는 동안 처음 9年 間을 제외하곤 단 한 차례도 다른 나라의 침공을
허용하지 않은 名君이었다.

그러나 그는 帝位에 오른 첫해 부터 신하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술과 女色과 사냥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한 臣下들이
忠言을 간하게 되면 귀찮게
군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처단하여 감히 누가 임금께
말 하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를 9년째 되던 해,
"추기(騶己)"라는 한 文士가
齊 威王에 알현을 청했다.

威王 : " 그대는 무엇때문에 나를 보러 왔는가? "
騶己 : " 듣자하니 왕께서는 음악을 좋아하신다기에 특별히
거문고를 들려 드리려 온 것입니다. "

잠시 후 시종이 거문고를 가져와 "추기"에게 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騶己"는 거문고 줄만 만지작거릴 뿐
탄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威王 : "그대는 어찌하여 거문고를 탄주하지 않는 것인가?
나를 위해 거문고를 탈 수 없다는 뜻인가?

騶己 : "臣은 거문고의 理致를 알 뿐,
탄주 솜씨는 왕께 드릴만한 것이 못됩니다."

제위왕은 은근히 화가 나서 말했다.
" 그렇다면 거문고의 理致를 말해 보라."

이에 "추기"가 옷깃을 바로 하고
거문고의 理致에 대하여 말하기 시작 했다.

"원래 거문고의 琴은 禁입니다.
즉 음(淫)과 사(邪)를 억제하고 모든 것을 바르게 한다는 뜻이지요."
옛날 三皇 중 하나인 복희(伏犧)씨가 처음 거문고를 만들었을 때
그 길이는 3척6촌 6푼이었읍니다.
그것은 1年이 366일로 이루어진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또 그 넓이는 6寸인 데.
이는 東,西.南,北,上,下를 합친 6合을 상징하기 위함입니다.

거문고의 앞은 넓고, 뒤는 좁습니다.
그것은 尊貴하고 卑踐한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위를 동글게하고 아래를 모나게 한 것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기 위함이며.

줄을 5개로 한 것은 天地가 五行에 의해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시위를 대현(大弦)과 소현(小弦)으로 나눈 것은
그 소리를 淸濁으로 구별하기 위함인데,
大弦이 내는 탁음은 넓고 온화하여 君王의 道를 상징하며,
小弦이 내는 淸音은 淸廉하고 맑으니 臣下의 道理입니다.
이리하여 宮,商,角,치(徵),羽의 다섯 음계가 나오니,
이는 明君과 明臣이 서로 만나 나라를 잘 다스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騶己"의 말을 듣고 있던 제위왕은 감탄하며
"그토록 거문고의 이치를 잘 아는 그대에게 과인을 위하여
한곡조 들려 주기를 청하오."라고 하자

"신은 탄주하지 않겠습니다."
"어째서 그러시오?"

"臣이 거문고를 만지면서도 탄주하지 않는 것은 王께서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국정을 돌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臣이 탄주하지 않으면 왕을 기쁘게 할 수 없듯이 왕께서도 나라를 맡고
계시면서 다스리지 않으신다면 백성을 기쁘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제야 제위왕은 "騶己"가 자신을 간하러 온 사람임을 알았다.
"선생은 거문고의 이치로써 나라 일을 비유하시니 내 어찌 선생의
말을 듣지 않으리오?
어떻게하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우선 술을 줄이시고,女色을 멀리 하십시오.
그런 후에 重臣과 姦臣을 구별하여 백성들을 지도하시면
능히 覇王의 대업을 이루실 것입니다."


齊 威王은 宰相감을 물색하기 위하여 9年이란 세월을 허비하였던 것을...... 이윽고 齊 威王은 朝廷으로 나가 신료들에게 선포했다.

"순우곤을 客卿에 올려 國政 고문으로 삼고,
騶己를 宰相에 임명하노라."


- 參考文軒 :列國誌 中에서 -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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