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 史

■ 殺身成仁

동천 2015. 12. 18. 17:14


■ 殺身成仁

殺身成仁의 뿌리를 찾을 려면 2,520년(BC. 5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합려는 "요"를 죽이고
제위에 오르긴 하였으나
"요"의 아들 "경기"가
아버지의 원한을 갚기 위하여
별동대를 구성, 호시탐탐 복수의 날을
기다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제거하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합려"는 재상 "오자서"를 불러
"專諸와 같은 호걸을 추천 해 주기를 청 하자
"오자서"는 시골 촌부 같은 "요이"라는 사람을 천거하였다.

"요이"는 5척 단구에 바람이 불면 넘어질 것 같은 허약체질이라
호랑이 같이 억센 "경기"를 제거하는데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오왕 "합려"는 크게 실망 하였다.

그러자 "요이"는 "사람을 죽이는 데는 힘만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臣이 "경기"에게로 가서 닭 목 자르듯 그의 목을 베어 오겠읍니다"
라고 장담한다.
그러고는 "요이"가 아뢰기를 "경기"가 결사대를 조직하고 장차
복수의 칼을 뽑아 오나라를 칠 생각이라면 잘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그를듯한 죄를 만들어 臣의 아내와 자식을
모조리 죽이고 臣의 오른팔을 끊는 형벌을 내리십시요."
"그런후 신을 오나라 밖으로 추방하면 "경기"는 틀림없이
신을 믿고 가까이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어찌
"경기를 죽이는 일에 실패가 있겠습니까?"


러자 오왕 "합려"는
"죄 없는 그대에게 어찌 그런 참혹한 형벌을 내릴 수 있겠는가?"
라고 말 하자 " 요이"가아뢰기를

"처자를 편안하게 하려고 임금에게 誠을 다하지 않으면 이는 忠이라 할 수
없으며 내몸을 아끼느라 임금의 근심을 덜어 주지 않으면 이는 義理라 할 수 없습니다.
臣이 忠義로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만 있다면 처자가 죽고
제 팔이 짤린다 한들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렇게하여 "요이"는 "경기"를 제거하여 불안하던 내정을
안정 시키고 名 宰相 "오자서"에 孫子兵法으로 유명한
"孫武"를 등용하여 중원의 새로운 실력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 參考文軒 :列國志 中에서 -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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