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누르하치와 遠崇煥

동천 2016. 9. 1. 06:04

▣누르하치와 遠崇煥

■1621년 3월,
누르하치는 파죽지세로 요동 한복판의 심양을 향해 밀려왔다.
심양성을 방어하던 賀世賢은 무모하게도 술이 취한 상태에서
친위군 1천여 명을 이끌고 성문을 열고 출격하다가 후금군에
유인되어 심양성도 함락되었다.

심양이 무너진 지 닷새 뒤인 3월18일, 누르하치는 요양을 공격하게
되고 명군은 심양의 경우처럼 대군을 성 밖으로 무모하게 출격시켜
후금군의 철기에 역공 당하면서 전세가 기울게 된다.

이렇게 심양과 요양이 함락됨으로써 遼東을 장악한 후금은
■1621년에 요양으로,
■1625년에 다시 심양으로 수도를 옮긴다.

후금은 이제 요하를 건너면 곧바로 寧遠을 거쳐 산해관을 돌파하면 북경과 황성이 위협 받게 되어 명나라 조야는 전율했다.

이렇게 거칠것 없이 연전연승으로 북경을 향하여 내달리던 후금의 누르하치는
해성처럼 나타난 明나라의 이순신
遠崇煥에 의하여 가로막히게 된다.

遠崇煥은 북경의 관문인 산해관을
반드시 지켜야하고, 산해관을 지키려면
그 현관이 되는 영원성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여,
많은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1624년 9월,대대적으로 영원성 수축공사를 완료하고,
1만여명의 정예군과 마카오로부터 구입한 홍이포 11문을
영원성으로 추진 배치 후 누르하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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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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