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이괄의 난

동천 2016. 9. 4. 06:05

▣이괄의 난


한편,
■1624년 2월 10일 새벽,이괄은 한양에 입성한다.
반란군이 서울을 점령한 것은 조선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괄은 경복궁의 옛 터에 사령부를 설치했다.
수원부사 이홍립도 그 안에 끼어 있었다.

한번 배신하면 계속 배신한다고 했던가?
인조 반정이 일어나던 당일,
훈련도감이던 그는 반정군이 창덕궁으로 진입하던 것을 방관하여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우더니
이번에는 다시 이괄에게 붙은 것이다.

■이괄은 지인들을 끌어 모아 새로운 조정을 꾸리기 시작하여
또 다른 정권교체가 임박한 것처럼 보였다.

■1624년 2월 11일 9시무렵,
鞍峴에서 정충신이 이끄는 진압군에 패한 이괄과 한명련은
패잔병을 이끌고 수구문을 나와 도성을 탈출했다.
그러나 계속된 진압군의 추격에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자중지란이 일어났다.

이괄의 부장 이수백과 기익헌은 이괄 父子와 한명련의 머리를 베어
인조의 피난지인 공주로 달려가 항복함으로써 20여 일에 걸쳐
진행되던 이괄의 난은 평정되고,

■1624년 2월 18일, 인조는 공주를 출발하여
■1624년 2월 22일, 서울로 귀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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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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