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侵略을 부르는 引繼鐵線
■ 반정을 통해 정권이 바뀐 이후의 불안정한 민심을 채 수습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괄의 난을 겪은 것이 자충수였다.
☞격변을 격으면서 민심은 크게 동요했고,
☞권력 지키기에 다급해진 인조 정권은 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동력을 상실한 데다
☞가도의 모문용에 코가 꽤인 인조 정권은 많은 군량미를 수탈 당하여 군사력 증강계획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괄의 난이 일어나자 청천강 이북 지방의 방어가 허술해 진 틈을 타 10만 이상의 요동민들이 탈출하여 철산,용천,의주 등 청천강 이북지역이 모문용과 요동민들의 안마당처럼 변하여 영토와 주권을 포기하는 지경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후금은 모문용과 가도 자체가 [목에 걸린 가시]인 데다 요동민들의 탈출이 이어지자 후금은 날이 갈수록 격앙되었고 그 분노는 조선을 향해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볼 때, 모문용과 가도는 분명 後金의 朝鮮 侵略을 불러들이는 [引繼鐵線]이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