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丁卯胡亂

동천 2016. 9. 4. 06:07

▣丁卯胡亂

■조선 조정은 황해도 이북의
방어선이 붕괴되자 전열을
다시 정비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도원수 장만과
부원수 정충신에게
평안도 지역의 패잔병과
함경도, 강원도 등지의
병력을 모아 임진강을 방어토록 하고,
총융사 李曙에게는 남한산성을 본거지로 삼아
下三道 군사를 통괄 지휘하여 한강을 방어토록 하며,
그리고 통제사 구인후가 거느리는 수군으로써 적이 강화도로
상륙하는 것을 저지하도록 조치했다.

■1월 18일,총사령관 [아민] 명의로
평안감사 윤훤에게 서신을 보내 강화 협상을 제의했다.

■1월 27일,
강숙 등은 조선 조정의 답서를 가지고 후금군 진영으로 갔다.

답서의 핵심은
"조선은 明을 200년 이상 섬겨왔고, 임진란 때 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明과의 관계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2월 2일,胡差(오랑캐 사신)가 [갑곳]을 통해 강화도로 들어오고,
■2월 5일, 조선은 姜絪을 임시 형조판서로 임명,회답사로 오가다가
■2월10일,인조는 후금의 사신으로 온 姜弘立과 朴蘭英,劉海 등을
접견했다. 두 사람은 심하 전투에서 투항 이후 9년만의 귀환이었고,
劉海는 본래 明의 관인으로서 후금으로 귀순했던 인물이다.

■1627년 3월 3일,결국 인조는 후금의 요구대로 강화를 체결하고
대청에 나아가 향을 피우고 하늘에 고하는 예를 몸소 거행했다.
인조는 예를 마치고 행궁으로 돌아가자 후금인들이 흰말과
검은 소를 잡아 피와 골을 그릇에 담았다.
조선 신료들과 호차들은 새로 만든 誓壇에 서서 맹세문을 낭독했다.

"조선이 향후 후금을
적대시하여 나쁜 마음을
품으면 이와 같이 피와
골이 나오게 되고
후금이 나쁜
마음을 품으면
역시 피와 골이
나와 하늘 아래서
죽게 될 것이다"
"이제 후금이 조선의
형이 되고 조선은 후금의 아우가 되기로 맹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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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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