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敗戰 問責
■항복했던 직후, 도성으로 돌아온 백성들 앞에 보이는 것은 시체가 나뒹굴고 모든 것이 불타버린 처참한 모습 뿐이었다.
절망 속에 눈에 핏발이 설 수밖에 없었던 백성들은 청군에 대한 적개심과 아울러 대의명분을 앞세운 斥和臣들의 경거망동 때문에 자신들의 삶이 망가졌다는 원망이 깊었다.
조정의 분위기는 무신들의 기세가 등등했다. 병조판서 신경진은 회의 석상에서 "쥐새끼 같은 자들이 나라를 이 지경에 이르러게 했다"며 목청을 높혔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병사들을 이끌고 산성의 방어를 담당했던 무신들이 보기에 문신들, 그 가운데서도 척화신들은 목소리만 컸을 뿐 城을 방어하거나 나라를 지키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존재라 생각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2월 19일 , 김류,홍서봉,이성구,신경진,최명길 등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척화신들에 대한 문책이 논의되었다.
삼사 신료들은 종사를 위태롭게 하고 수많은 생령들을 죽거나 끌려가게 만든 김자점,김경징,장만 등에 엄격한 군율을 적용하여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는 인조를 왕위에 올려놓은 공신들이어서 이들을 비호하며 미적대다가 결국 화성 패전의 책임을 물어 김경징과 장만 두 사람만은 군율에따라 사형에 처하고 충청수사 강진흔은 斬壽하였으며 김좌점은 끝까지 예우하여 끝내 유배형에 그치고 말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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