任辰倭亂

10.太平會盟圖

동천 2018. 4. 4. 20:28

太平會盟圖



■ 10. 明의 壬辰倭亂 參戰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義兵部隊를 官軍에 편입,
作戰도 보다 組織化되어 육.해 모든 戰線에서 反擊作戰은
한층 강화되어갔다.

한편 朝鮮의 구원 요청을 받은 明나라는
日本의 征明假途의 自慰策으로 派兵하게 되고

☞1592년 7월15일,
1차로 遼陽副摠兵 조승훈이 이끄는 5,000명의 군대가 派遣되어
平壤城을 공격했다가 적의 기습을 받아 大敗하여,

☞1593년 1월 8일,
2차로 李如松이 이끄는 4만 3,000여명의 병력을 派兵,
朝鮮軍과 연합하여 平壤城을 공격, 日本軍 1만 여 명을
살상하고 平壤城을 奪還한다.

明軍은 자신감을 가지고 敗走하는 日本軍을 追擊하다가
벽제관에서 日本軍에 敗하자 平壤으로 후퇴,이때부터 싸우지도 않고
지루한 협상으로 7년간 이어지면서 점령군 日本軍과 救援軍 明軍의
횡포로 실로 형용할 수없는 慘劇을 맞게 된다.

☞ 한편 咸鏡道에서는 정문부 의병부대가 백탑전투에서
가토군을 섬멸하여 마천령 이북지방을 收復하는 등
경기 이북지방에서 日本軍을 완전히 몰아냈다.

☞1593년 2월12일 이때 삼도체찰사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明軍과 합세하여 서울을 奪還하려다가 明軍의 後退로
孤立狀態에 빠지게 된다.

권률 將軍은 軍.民 合同으로 화차·비격진천뢰·총통·활 등을 總 動員,
수차례 공격해온 우끼다[宇喜多秀家]의 3만 日本軍을 물리쳐
壬辰倭亂 3大捷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日本軍은 마침내 4월 18일 서울에서 總退却하게 된다.



東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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