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13.壬辰亂 義兵抗爭의 義意

동천 2020. 4. 17. 10:14

 

 

 

 

 

 

義兵抗爭史 

■13.壬辰亂 義兵抗爭의 義意

壬辰倭亂時 의병들의 대소 전투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으며  
그중 활약상이 컸던 1592년부터 1593년 간의 대표적인 몇몇 전투를 실었으며
그 외에도  
[김면]-[정인홍]-[손인갑]의 부계 전투,
[양대박]의 운암 전투,
[손인갑]의 초계현 마진 전투, 
[김면]-[김준민]의 우척현 부근 전투,
[곽재우]-[윤탁]-[주몽룡]의 영산 전투,
[유종게]의 소천 전투,
[이정암]의 연안성 전투,
[임 중량]-[윤붕]의 중화 전투 등 의병항쟁이 많으나  
지면 관계로 모두 싣지 못하여 참으로 유감스럽기만 하다.
 
조선 왕조는 사화와 당쟁으로 국력이 약화되고 국방은 소홀한 틈에 왜군의 침략하자
순식간에 수도 한양이 함락되고 파죽지세로 평안도, 함경도로 북상하였다.
조선의 관군이 무능하여 도망하기에 급급한 상황 하에서
의지할 곳 없게 된 백성들은 異民族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적개심과 가족의 생명과 재산에
대한 토착적 애향심과 근왕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민족의 자존과 향리 방어 및 조국 수호를
위하여 스스로 구국항쟁의 길에 나서게 되었던 것이다. 

의병장들의 대부분은 儒林들이었으며 의병부대의 군사는 농민을 주축으로 한 민중이었다.
나라와 겨례를 구하기 위하여 자진하여 국난극복의 대열에 참여한 백성들의 슬기로운 항쟁은
민족사에 찬연히 빛날 민족의 얼이며 겨레의 자랑이라 하겠다.
이러한 애국.애족.애향의 자주적 무력항쟁 정신은
정묘. 병자호란 시의 의병과 한말의 의병운동으로 이어져 갔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