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6월 21일, 적의 대군이 성을 3중 포위했으나 총포는 한 발도 쏘지 않았으므로 성중에는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없으니 적은 마침내 물러갔다 ☞6월 22일 10시경부터 제1파,제2파가 연속으로 동문 성벽으로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자 한밤중에 제3파가 공격해 오자 철환고 불화살을 쏘아 격퇴했다 ☞6월 23일, 주간에 왜군은 조총을 난사하면서 성 주변 호수에 흙,돌 풀더미를 메꾸고 성벽 초석을 파내면서 3회에 걸쳐공격해 왔으나 아군의 분전으로 격퇴하였다 ☞6월24일, 아군이 완강하게 저항을 계속하자 5~6천명을 증가시켜 공격해 왔으나 격퇴하였다 ☞6월 25일, 작전 7일째인 이날 부터 동문 밖30보 되는 지점에 흙을 쌓아 올려 土山을 만들고 그 위에 망루를 세워 성안을 내려다 보면서 총,포 사격을 가하므로 이에 대응, 아군도 하룻밤 사이에 토산을 만들고 현자총통으로 적의 망루를 분쇄하였다. 이날, 왜군이 서쪽에서 성벽을 기어올라 돌진해와 위태로워 지자 충청병사 [黃進]은 대검을 빼어 들고 [오늘 내가 죽을 곳을 얻었다]면서 용전 분투하여 겨우 버티었다. ☞6월 26일, 작전 8일째인 이날 적은 동문밖에 큰 기둥 2개를 세우고 ☞ 6월 28일, 서문을 지키고 있던 서예원이 경계를 소홀하여 ☞6월 29일, 17:1의 劣勢한 兵力으로1593년 6월 22일~ 29일까지 8박9일 동안 24회에 걸쳐 밤.낮으로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서 朝鮮軍은 모두 勝利하였지만 전투 9일째 폭우가 쏟아지면서 東門 城壁이 무너져 내려 대부대로 성안에 돌입하자 衆寡不敵으로 흩어지기 시작, 모두 촉석루쪽으로 밀리게 되었다. 아군 장병들은 北向再拜한 다음 병기를 물에 버리고 남강에 투신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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