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44. 獨立軍 創設 나라가 없어지던 날 1910년 8월 29일, 帝國主義 日本은 景福宮에 일장기를 걸어 놓고 국권 찬탈을 철저히 상징했다
이토록 뼈아픈 민족의 苦難史를 막기 위해 자신과 가족을 버리며 오직 쓸어져 가는 大韓帝國을 위해 몸 바친 그 이름을 義兵이라 불렀고
실로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이름이다.
이들 의병을 [乙巳勒約]에 의거 [韓日合邦]된 시점을 기준으로 大韓帝國이 멸망하기 이전까지 일제 침략에 항전한 것을 [義兵戰爭], 大韓帝國이 멸망한 후에 일제와 싸운 것을 [獨立戰爭]으로 구분한다.
국권 상실을 전후해 간도와 연해주 지방으로 옮겨온 의병 출신의 애국지사와 교민들은 각기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하고 독립군 기지를 설치하여 장차 독립전쟁에 대비한 독립군을 양성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 거족적인 항일 기운이 일게 되자 [洪範圖]는 즉각 독립군 조직에 착수하여
그해 3~6월 사이에 舊義兵 출신과 沿海州와 間道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중심으로 [大韓獨立軍]을 창설하고, 간도로 근거지를 옮긴 직후인 그해 8월에 독립운동가들의 숙원이었던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하여 두만강을 건너 해산진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고 白頭山 부근으로 根據地를 옮겨왔다.
이것은 3.1 운동 이후 전개된 최초의 국내 진입 작전으로 이후 왕성하게 펼쳐지는 독립군 항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것이다.
1919년 8월에 [徐一]·[金佐鎭]·[李章寧]·[金奎植]·[崔海]·[鄭勳]등이 조직한 [북로군정서]는 북만주 일대 독립운동의 중심이었다.
[북로군정서]는 국경에 가까운 밀림지대인 吉林省 汪淸縣 西大坡溝에 본부를 두고 있었으며, 士官練成所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이어 10월, 대한독립군은 江界, 만포진에 진입하고 慈城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70여 명을 살상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