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54. 學徒義勇軍의 浦項戰鬪

동천 2020. 5. 10. 21:03









 

 

 

 

 

 

 

義兵抗爭史


■ 54. 學徒義勇軍의 浦項戰鬪


북괴군은 낙동강 교두보를
돌파하기 위해 2개 사단을
포항 방면에 집중시켜
대공세를 시도하였다.

이 무렵,
大邱에서 결성됐던
[대한 학도의용대] 87명은
[金錫源] 將軍이 지휘하는
安東 주둔 首都師團에 들어가
안동 철수작전에 처음으로 전투에 참전한 뒤,
16명은 수도사단에 정식 입대하고 나머지 71명은 귀가해도 좋다는
사단장의 명령을 받았지만 학도들은 [김석원] 장군을 따라가 3사단이 위치한
포항으로 이동, 당시 포항여중에 위치한 3사단 후방지휘소에서 임시 대기하게 되었다.

사단 후방 사령부에는 대부분의 병력을 전방 전투에 투입하여
연락 장교와 군악대원 20여 명만 잔류하고 있었다.

8월 11일 새벽 3시경, 북괴군은 국군 제3사단을 포항 북방에 고립시키고
인민군 766유격대 일부 병력이 후방을 침투하여 학도 의용군과 맞부딪쳤다.

포성에 놀라 잠이 깬 학도병들은 나뭇가지를 꺾어 위장하고 진지를 보강하며
긴장으로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어깨 견장,앞에 쥔 따발총, [적이다!] 30m 전방 가까이 접근하자 중대장 [김용섭]의
M-1이 불을 뿜음과 동시 일제사격으로 순식간에 20여 명 적을 사살했다.

2시간 뒤,
날이 훤히 밝았다.

학도들은 이제 사단에서 지원부대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원군은 오지 않고 적의 대력이
박격포 지원을 받으며 포복으로
접근 오고 있었다.

군악대 병력을 포함하여
60여 명으로 중과부적이라
철수를 서둘렀다. 그러나 곧 다시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고 우리는  완강하게 저항하여 격퇴시켰다.

8월의 떠거운 태양에 땀이 흠뻑 젖은 학도들,
바람결에 코를 자극하는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 속에 휴식을 취했다.
학도들은 수류탄을 든 채 돌격전을 감행하는 정면의 적을 격퇴했다.

오후 2시, 벌써 두 끼를 굶은 학도들은 땀이 온몸을 적시고
혓바닥이 오그라들듯 입이 탔다. 이때

 북괴군 :  "국방군 동무들! 내 말이 들리오?"
              "우리는 인민군 766부대요."
              "동무들은 3사단 동무들이 아닙니까?"

              "동무들 부대는 이미 손을 들었어."
              "어서 악수합시다." 
라며 長廣舌을 계속하였다.

순간 참다못한 [吉安永] 학도병이 벌떡 일어나 전진하며 적을 향해 총을 쏘았다.
적의 표적이 된 [吉安永]은 적들의 집중 사격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를 보고 흥분한 [琴炳善] 학도병이 뒤따라 일어나 적들을 향해 총을 쏘자
적들은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때,
적의 총공세가 정면과 배후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젠 우측과 후방에 있던
국군도 없었고 탄약도 바닥이 났다.

학도들은 최후임을 직감하고 수류탄을
하나씩 나눠 들고 안전핀을 뽑아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노도와 같이
적진을 향해 돌진해 갔다.

오후 3시,
71명의 학도들이
적 정규군과 맞부딪친
전투는 11시간 만에야 끝이 났다. 
총탄이 멎은 전쟁터엔 장렬하게
산화한 47명 학도병의 애국 투혼이
서려 있었다.
       
군번 없이 싸웠던 [이우근=17세. 서울 성동중학교 3학년] 학도병은
전투 중 어머니께 쓴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가슴에 안은채 전사했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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