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靑山里 戰鬪 背景 : 생략
義兵抗爭史 1950년 6월 26일 11:00시경 각급학교는 등교한 학생들을 연병장에 집합시켜 북괴 남침을 알리고 교령을 발표하자 서울 시내 각 중학교부터 대학 교정에서는 북괴 남침을 규탄하고 괴뢰 도당을 타도하자는 궐기대회가 열렸고 마침내 학도결사대원으로 지원하고 나서게 된다. 하여, [1 ]非常學徒隊 1950년 6월 28일,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에 들어가자 피난길에 나섰던 서울 시내 각급 학교 호국단 간부 200여명이 수원에 모여 [非常學徒隊]를 조직하여 6월 29일부터 국방부 정훈국 지도하에 처음으로 종군하게 된다. 이것이 학도로서 조직적으로 참전케 된 최초의 학도의용군으로서 그 사실이 전국 방방곡곡에 알려져 의분에 찬 애국 학도들 가슴에 얼을 불러 일으켰고 마침내 100만 학도의 궐기를 촉구하는 嚆矢가 되었다. [2]大韓學徒義勇隊 7월 1일 대전에서 많은 피난 학도들과 현지 학도들이 모여 대한학도의용대를 스스로 조직, 그중 상당수가 현지 입대하여 일개 병사로써 참전했다. 7월 17일 국방부가 대구로 이동해감에 따라 [학도의용대]도 대구로 이동하여 7월 19일, [학도 위문대] 학생들은 대구에서[비상학도대]와 [의용학도대]를 통합, [대한학도의용대]로 개편하였고, 부산에서도 이와는 별도로 [대한학도의용대]가 조직되어 참전하게 된다. 정부가 부산으로 遷都하자 두개의 학도의용대는 하나로 통합되어 국방부 정훈국에 소속되어 유일한 전시 학도 조직체로서 [학도의용군]의 실질적인 모체가 되었고. [학도의용대]를 통해 전투에 참가한 대원수가 2만7천7백명에 이르렀으며, 20만의 대원을 보유하여 후방 선무공작 등 보국에 공헌해었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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