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동천 2020. 6. 12. 21:03

 

 

 

 

 

 

 

 

 

 

 

 

義兵抗爭史


■ 59. 海兵隊 女性 義勇軍


1950년 6월 25일 불법 남침한 북괴군 공세에 밀려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당시
제주도 주둔 해병대는 인천 상륙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면서
제주도의 청. 장년을 대대적으로 모집하였다.

이때,
중학교 3학년 이상 어린 학생부터
6학년까지의 학생과 교사. 청년 등
3,000여 명은 해병대에
자원입대하였는데
중학교 3학년 이상의
여학생과 여교사들도
"조국 수호의 대의 앞에서
남. 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비장한 결의와 각오로 해병대에
자진 입대했다.

해병대 자원 입대자는
1기에서 4기까지 총 3,000여 명이었는데 
50년 8월 5일, 제3기생,
50년 8월 30일, 제4기생 모집 시에는
청장년들은 대부분이 학생들이었고
이 중에 여자 의용군 126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1950년 8월 27일 ~ 28일 양일간에 집결한 이들은 신신체검사와
간단한 구두 시혐을 받고 합격자는 집에 갈 시간 없이 바로
남자들은 제주 산지에 있는 주정공장에,
여자들은 제주 동초등학교에 집결,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머리가 긴 여자는 단발 머리형으로 자르고

8월 30일, 태극기를 가슴에 두르고 북초등학교에서 입대식을 가짐으로써
            해군 역사상 최초의 여자 의용군이 탄생하였으며
1950년 9월 5일 육군 여군 창설보다 6일 전 탄생하게 된다.

* 한국 여군의 역사는 1948년 8월 간호장교후보생 교육부터이지만............

 
1950년 9월 1일 아침, 전송하는 인파가 흔드는 
                       태극기 물결을 헤치며
                        제주항의 산지 부두에서 출항,

1950년 9월 2일 저녁, 진해항에 입항,
                  경화초등학교에서
                 신병 기초훈련을 받고

1950년 10월 10일, 40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수료와 동시 학력에 따라 
                소위:2명, 병 조장(원사):4명,
            1등 병조(상사):6명, 2등 병조(중사):6명,
          3등 병조(하사):15명, 상병:93명,
       계:126명 등으로 해군본부(부산)와
      통제소(해군병원)에 배치되었다.

이들은 국군과 UN군이 한만 국경선인
압록강에 도달할 무렵인 1950년 11월부터
1~2개월 간격으로 자원 제대하였으며 휴전회담이 개시되어
전선이 교착상태에 있을 때인 1951년 12월 전원 제대하였다.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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