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兵抗爭史

■ 60. 陸軍 女性義勇軍

동천 2020. 6. 12. 22:06

 

 

 

 

 

 

 

 

 

 

義兵抗爭史


■ 60. 陸軍 女性義勇軍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김현숙 초대 교육대장이

"나라의 위기에 여자라고 가만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 의용군을 모집하게 해 주세요."
라는 건의에 의하여 여성 의용군이 탄생하게 되는데

한국전쟁 발발 3달 뒤인
1950년 9월 1일, 정부는
초대 교육대장을  김현숙으로
여성 의용군 교육대를 창설했다.

제1기생 500명 선발에
2,000여 명이 응시하였고,
혈서를 쓰고 입대한 사람도
있었다.

여군 1만 명 시대에 진입한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피복과 신발, 모자 등은 남자용 중에서 작은 것을 골라 지급하였으므로  
모두가 크서 몸에 맞지 않았고 모자는 흘러내려 눈이 가리는 지경 이어서
"인민군 포로 같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교육은 4주간이었으며,

1기생은 500명 입소,
9명 탈락하여 491명이.

2기는 384명 입소,
1명 탈락하여 383명이
전장에 투입되었다.

여성 의용군의 주요 임무는
정훈, 간호, 유격, 행정 등
이었는데...

* 다부동 전투에서
인민군 45명을 귀순시킨
대한청년단 소속 [금숙희] 단원

*전선 상공에서 투항 권고
전단을 살포했던 [김명자] 소위 

* 촌부로 가장,
눈보라와 적설을 헤쳐
포위망 속에서 아군을
구출한 구월산의 여장군 [이정숙] 등

이들의 활동은
- 1.4 후퇴 당시 신분을 위장, 유격대 활동 전개하고,
- 9.28 수복을 전. 후하여 각 전투부대에서 활동,
- 지리산, 백운산 등 주요 지역에서 대적 대민 선무활동 등으로
   북한 게릴라 약 1,200명을 귀순시키는 전공을 세웠다.
여군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 시절,
열악한 환경과 이유 없는 차별과도 싸워야 했으며
전쟁 이후에도 "여군은 드세서 같이 일하기 힘들다는
편견 속에서 자랑스러운 영웅임을 숨겨야 했던 그들,
꽃다웠던 그 시절 포탄이 날아드는 전장에서 군인이 되어
오직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버텨냈던 그들, 열악하고 위험천만한
전시 속에서도 똑 같이 목숨 바쳐 싸워 준 영웅들이지만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아 잊혀 가는 여전사 6.25 여성 의용군.
한국전쟁 속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 모든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한 날.
이제 우리가 그때 그녀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억하고 간직할 차례가 아닐까?

  參考文軒: 壬辰倭亂史.義兵運動史. 2作戰司精神敎育敎材 等

                                                      
東 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