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8.魏文后와 서문표(1)

동천 2009. 4. 13. 15:37
魏文侯 와 서문표(1)

때는 B.C .597年頃
魏나라 文侯가 당시의 腐悖한 社會를 改革하기 위하여
"서문표"라는 賢人을 登用하게 된다.

魏나라 文侯는
韓나라, 趙나라 등과 接境을 이루고 있는 "업"땅은
交通과 軍事的 要衝地로서 대단히 중요한 이곳을
能히 다스릴만한 人材를 찾고 있었는데,

상경 "적황"은
명장 "악양"과 더불어 "중산국"을 공격하여 "中山城을 점령한
武才 "서문표"가 적임자라 하여 그를 천거 하였다.

任地에 부임한 "서문표"는
"업"땅은 交通과 軍事的 要衝地로서 복잡할터인데
豫想과는 달리 썰렁하여, 民情視察을 하여
몇몇 住民에게 애로사항을 알아본즉,
"저희들은 河伯이 자주 婦人을 얻는 바람에 못살겠다."는 대답이었다.


그 것이 무슨 말이냐?
이곳 마을 밖에는 장수가 흐르고,
그 神에 처녀를 해마다 바치지 않으면 큰 재액을 당하게 됩니다.


河伯에게 처녀를 바쳐야 한다는 사람이 누구냐?
이 고을 무당입니다.

이야기인 즉슨,
해마다 河伯에게 바칠 처녀를 고르러 다니면
자기딸을 내주기 싫은 그 집 父母는
그 巫女에게 財物을 바쳐야 하고,
결국 가난한 백성의 집 딸만 빼앗기는 셈이 되는 것이다.

장수의 水神이 그리 영험하다 하니
나도 한번 보고 싶으니 행사날에는 기별하라고 일렀다.

河伯의 婚禮行事場에는 마을 유지라고 하는 세노인과 관속들이
新任 守長 "서문표"를 찾아와 우두머리 무당을 소개하며 인사를 시켰다.

"서문표"는 우두머리 巫女를 向해
해마다 백성들을 위해 수고가 많도다.
헌데, 오는 河伯에게 시집가는 신부의 얼굴을 보고 싶으니 잠시 이리로 데려오라!


서문표가 우두머리 巫女를 돌아보며
명색이 河伯에 바치는 女子인데 어찌 이리 아름답지 못한 처녀를 구했단 말이냐?
수고스럽지만 너는 직접 河伯에게 가서 天下絶色의 美人을 구해 바칠 터이니
며칠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드리고 오느라!


그리고는 자신이 대리고 온 병사들에게
이 늙은 무당을 河伯이 있는 곳으로 보내주어라!

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물 깊은 곳에다 던져 버렸다.
서문표는 한동안 물가에 서 있다가 兵士들에게 다시 분부하기를
무당이 늙어 건망증이 심한 모양이다.
河伯에게 가더니 돌아와 보고할 생각을 하지 않는구나.
河伯이 期日을 연기해 줄지 어떨지 나는 몹씨 궁금하다.
늙은 무당의 제자를 다시 한번 보내 보아라!


命이 떨어지자 巫女 하나를 덜렁 들어 강물속에 내 던졌다.
어허, 그 스승에 그 제자로다.
어이하여 가기만하면 이리도 소식이 없는 것이냐?
하나씩 보낼 것이 아니라 무더기로 보내봐야 쓰겠다.
이리하여 제자무녀 20名을 다 강물에 던져 버렸다.


얼마후에 "서문표"는 또 말했다.
아무튼 女子들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기끗 심부름을 시켰더니 河伯에게 잘 傳하지 못했나 보다
이번엔 마을의 유지를 보내 보자.
저들이라면 나의 뜻을 잘 전달하겠지.


곁에서 지금까지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3名의 유지는
몸을 뒤로 빼며 황급히 대답했지만
놔 둘리가 없다.
이놈들 어서 가서 河伯에게 나의 뜻을 전하지 못할가!

兵士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세老人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 서문표"는 老人을 기다리는 듯한 表情을 짓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거참 이상하다.
어찌하여 河伯을 만나러간 者들마다 돌아올 생각을 않는 것인가?
女子나 늙은이들만 보내서 그런가보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일을 주관해온 官吏들을 보내봐야겠다.


"서문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巫黨과 짜고 財物을 긁어온 관속들을 깊은 물속으로 던져버렸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東 川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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