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인 과 基督敎

왕권신수설의 토대[15]

동천 2009. 4. 19. 12:47


    왕권신수설의 토대[15]

      ★ 4세기 초의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 세력의 침투는 서방에 비해
      동방이 훨씬 높았으나 리키니우스는
      단지 종교문제로만 머물은 반면,
      콘스탄티누스는 한 차원 넘어선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어
      인간의 이름으로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면 암살이 자행되던 시절에
      신의 이름으로 제위를 계승함으로서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하는
      <왕권신수설>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로마 제국의 단독 황제가 되기 위한
      단계를 하나씩 착실하게 올라가고
      있던 시기의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씩 착실하게
      실적을 쌓아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 AD 324년,
      마지막으로 남은 경쟁자 리키니우스를 타도하는데 성공한 콘스탄티누스는
      그해부터 337년까지 13년 동안 유일한 최고 권력자로 군림하면서
      지금까지 제국 서방에서 쓴 기독교 진흥책을 동방에서도 쓰게 된다.

      그 제 1탄이 리키니우스 타도직후에 시작된 새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
      (터키의 이스탄불)의 건설과 더불어 황제의 사유재산을 기독교회에 기증한 것이다
      .


      황제의 재산은 로마 제국의 제위에
      올랐기 때문에 사용할 권리를 얻었을 뿐
      개인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유재산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신에게 기도를 드리는 곳이 교회지만
      기도와는 관계없이 미사를 비롯한
      종교 의식과 빈민구제 등 기능을
      발휘하게 하려면 돈이 들게 되고
      이것은 일반 신도들의 기부로
      충당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종교적 환경을 만드는데
      확고한 경제 기반을
      제공하는 사유재산을 기증하였으니
      더 이상적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이리하여 로마 제국은 점점 기독교
      제국으로 내달리는 터전을 확고히 다져갔으니 소아시아에서 시리아,팔레스티나에 걸친 제국 동방의
      기독교회가 콘스탄티누스를 12사도에 이어지는 존재로 숭배한 것도 당연하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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