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12년, 콘스탄티누스는 "밀비우스다리 전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결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로마 제국에도 기독교에도 운명을 결정짓는 해가 된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313년, 이제 제국 서방의 "정제"로 올라선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정제인 ]리키니우스]가 밀라노에서 만난 수뇌 회담에서 다음과 같은 그 유명한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게 된다. 오늘부터 기독교든 다른 어떤 종교든 관계없이 각자 원하는 종교를 믿고 그기에 수반되는 제의에 참가할 자유를 완전히 인정받는다. 그것이 어떤 신이든 그 지고의 존재가 은혜와 자애로써 제국에 사는 모든 사람을 화해와 융화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게다가 <밀라노 칙령>은 제국의 각 지방에서 실제로 행정을 담당하는 지방장관에게 말하고 있다 기독교도에게 인정된 이 완전한 신앙의 자유는 다른 신을 믿는 자에게도 똑같이 인정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의 자유를인정하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제국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어떤 신이나 종교도 그 명예와 존엄성이 훼손당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불평할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의 승화이며 이 정신으로 현대까지 왔다면 민족이나 국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도 종교를 기치로 내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칙령의 마지막 부분에는 디오클라티아누스의 탄압으로 몰수당한 교회 재산의 반환을 명령한 내용은 콘스탄티누스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몰수된 뒤 경매에 부쳐진 교회 재산을 사들여 소유하고 있는 자에게는 그것을 반환할 때 국가로부터 정당한 값으로 보상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여기에 명기한다. <밀라노 칙령>은 어디까지나 서방 정제 [콘스탄티누스]와 동방 정제 [리키니우스]의 연명으로 되어 있는데 기독교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에서도 획기적인 이 칙령이 [콘스탄티누스] 한 사람의 작품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은 [콘스탄티누스]가 [리키니우스]보다 훨씬 열심히 철저하게 실행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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