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브로시우스>는 주교 관을 머리에 쓴 직후에 주교들은 교회 재산으로 호사스러운 생활에 젖어 비난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여 전 재산을 기독교회에 기부하고 햇빛과 삭풍을 적절히 구사하여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 주교로 서임된 뒤 로마제국의 상황을 보면 * AD 375년, 발렌티니아누스 사망- 21세의 아들 <그라티아누스>가 서방 제국 황제 취임 * AD 378년, 동방의 발렌스 황제가 고트족과 싸우다 전사하여 이듬해에 33세의< 데오도시우스>가 동방의 황제에 취임하게 되는데.....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황제가 된 첫해에 야만족과 싸우다 지나치게 분투했는지 겨울로 접어들자 중병이 들어 그리스의 "테살로키"에 머물렀는데 생사의 기로에 있을 때 찾아간 테살로키 주교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고부터 앓던 중병은 신의 뜻인지 아니면 자연 치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끔히 치유되어 이듬해부터 다시 정력적으로 활약하게 된다. <데오도시우스 황제>자신은 이것이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신의 은총을 받았다고 굳게 믿은 것 같고 이런 연유로 그는 기독교 진흥을 위해 진두지휘하는 황제가 된다. 이러한 시기에 <암브로시우스>는 20년 동안이나 고위 관료를 지낸 경험으로 권력자의 어디를 찌르면 그들에게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자가 무엇을 가장 필요로 하는가를 찾아내어 교모하게 그것을 해 보이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주교라 해도 하층계급 출신에 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하여 교양없는 사람들이 많았던 때였는지라 <암브로시우스>는 용모뿐만 아니라 높은 교양과 명석한 두뇌,세련된 말을 구사한 설득력 때문에 群鷄一鶴 같은 존재였다. 황제 역시 <율리아누스>를 제외하면 서기의 도움 없이는 문장 하나도 제대로 못 쓰는 수준이어서 사절을 보낼 때나 반란을 일으킨 군단장을 설득할 때나 야만족 족장과 교섭할 때에도 로마 황제가 보낸 특사는 과연 다르구나 하고 상대가 감탄할 만큼 뛰어난 외교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게다가 권력자는 결단을 내려야 할 일이 많았을 터이고 이런 때에 <암브로시우스>는 황제들의 부탁이 있으면 훌륭하게 수행 해냈다. 東 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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