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와 <이단> [22] ★ AD 380년~395년까지의 15년은 기독교의 승리로 가는 길의 최종단계에 해당하며. 그것은 <이교>와 <이단>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선전포고의 배후 인물은 <암브로시우스>였고 앞에 나선 것은 <그라티아누스 황제>와 <테오도시우스 황제>였다. 이교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를 이단은 기독교 내의 삼위일체설을 믿는 카톨릭파 이외의 모든 기독교 종파를 말하는 것으로 삼위일체파는 신과 그 아들 예수는 동격이고 여기에 성령을 더한 "세 位格"은 일체라고 주장하는 파로써 이것은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하여 AD 325년에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되었고 이 시기 이후에는 카톨릭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단> 배격은 원래 아리우스파 세력이 강했지만 이제 가톨릭교도인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다스리게 된 제국 동방에서 폭발했다. 발화점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반세기 동안 아리우스파가 독점해 온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 자리였다. 우선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아리우스파인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에게 삼위일체파로 전향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이를 거부하자 그를 추방하고 만다. 하여, 원로원 의원중 한사람을 급히 세례를 받고,암브로시우스처럼 하여 주교로 서임하니 아리우스파가 계속 우세했던 동방에 가톨릭파의 강력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고 그래서 제국 동방에서는 <이교>보다 <이단>배격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는 AD 380년~395년까지 15년 동안 <이단>배척을 목적으로 한 칙령만 15가지나 공포하고 위반자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게 되는데 *칙령으로 금지된 것은 -이단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 -그 가르침을 듣는 것 -동지를 꾀어서 그 가르침을 집단으로 듣는 것 -신자들이 이단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는 것 -사법 관계자가 이단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알면서 고발하지 않는 것 들이며 이러한 이단자를 찾아내어 고발하고 재판하기 위하여 <성스러운 관청>이라 불리는 특별기관을 설립 운영하게 된다. 그리하여 위반한 성직자는 면세혜택같은 우대조치 박탈과 추방령을 주로 받고 일반신자에게는 벌금형을, 그리고 위반을 거듭할 때는 성직자,일반신자 구별 없이 사형까지 당할 수 있었다. 東 川 |
'Roma인 과 基督敎'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심마쿠스>와 <암브로시우스> [24] (0) | 2009.04.27 |
---|---|
이교도 배척 [23] (0) | 2009.04.27 |
암브로시우스 [21] (0) | 2009.04.24 |
암브로시우스[20] (0) | 2009.04.23 |
背敎者 <율리아누스> [19] (0) | 2009.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