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41,毛 遂

동천 2009. 6. 2. 17:39



毛 遂

B.C.258年, 秦나라 소양왕 때

<범수>의 공작으로 조나라의명장인 무안군 백기 장군을 죽게한 뒤, 왕홀을 대장으로 하여 20만 대군으로 趙나라를 侵攻하여 도읍인 <한단>을 포위한다.

이에, 趙나라는 5個月 동안 버티다가 趙효성왕은 楚나라와 合縱을 맺기위하여 평원군을 단장으로하는 20명의 화평사절단을 파견할 것을 결심하게 된다. 평원군은 食客 3,000餘名 中에 19名을 선발하고 나서 1명을 더 선발할려니 마땅한 자가 없어 3,000명 식객 중에 쓸만한 자가 이리도 없었드란 말이냐고 탄식하자 毛遂가 일어나 자기를 대려가달라고 청원한다.

그는 평원군 食客으로 3年을 지나며 無名으로 있던 者여서 평원군은 毛遂를 보고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속에서도 그 끝이 보이는 法인데 그대가 어찌 이런 重大事에 감히 나서느냐>고 하자

毛遂는 <송곳의 끝만 아니라 통체로 보일 것이다>라면서 한사코 대려가 줄 것을 請한다.


화평교섭단이 楚나라로 가서는 이른 아침부터 교섭이 시작되었으나 한낮이 지나도 좀처럼 진전되지 않자, 아랫자리에서 기다리던 毛遂가 나서게 된다.

毛遂는 楚王에게
"盟約을 맺으면 趙.楚 두나라는 서로 有利하며, 맺지 않으면 양쪽 다 不利합니다 .

이런 간단한 문제를 가지고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結論을 얻지 못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입니까?


초왕... 이사람은 누구요?
평원군..."저를 따라온 사람입니다.
초왕...물러가라.비천한 자가 분수없이 무슨 일인가?

그러나 모수는 칼자루를 잡고 초왕에게로 다가갔다.

"대왕께서 저를 꾸짖는 것은 초나라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제가 가까이 와 있는 이상 그 힘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대왕의 목숨은 제 손안에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고는 말한다."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과 백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있어 초나라에 맞설 강국은 없어 패왕으로서의 자격은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진나라의 장군 백기와 같은 보잘것 없는 자가 이끄는 불과 수만 명의 군대와 싸워 국도인 언과 영을 빼앗기고 종묘는 불태워져 선조의 영혼이 모독되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이 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조나라와 초나라가 동맹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려는 것은 조나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초나라를 위해서입니다.그러함에도 저를 꾸짖으시니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요"


초나라 왕은 모수의 당돌하고 논리 정연한 설득에 굴복하고 동맹을 맺게 되고, 평원군은 모수로 인하여 화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귀국길에 오른다.

그리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제부터 나는 인물을 평가하는 일은 삼가하겠다.내가 오늘날까지 평가한 사람의 수는 수천명에 달할 것이다.사람을 보는 내 눈은 틀림없다고 생각했지만 모수(모수)를 잘못 본 것을 보면 나의 어리석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모수(모수)의 세치 혀는 백만의 대군과도 맞먹는다." 櫓檣空大隨人轉 : 배젓는 노는 제아무리 클지라도 결국 사공의 손에 의해 움직이며
枰錘雖小壓千斤 : 저울추는 비록 작지만 천근의 무게를 다루는 도다
利錐不與囊中處 : 참으로 날카로운 송곳은 주머니속과 하등 관계가 없나니
文武紛紛十九人 : 문이니 무니 떠들어대는19명따위가 뽑혔도다

이는 평원군이 모수(毛遂)의 뛰어난 인물을 잘못보고 그동안 사람을 보는 눈이 어두웠음을 한탄한 글이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 列國志-

東 川 다음에 계속됩니다






'史 記'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孔子가 楚나라로 간 까닭  (0) 2009.06.15
42. 孔子의 政治論  (0) 2009.06.05
40.孟嘗君 과 풍환(3)  (0) 2009.05.28
39.孟嘗君 과 풍환(2)   (0) 2009.05.23
38.孟嘗君 과 풍환(1)   (0) 2009.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