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 記

48. ■ 李斯 와 韓非子(2)

동천 2009. 7. 9. 18:37


■ 李斯 와 韓非子(2)


이러한 李斯가 追放令이 내려져 마땅히 갈곳도 없는 그로서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旅館에 머물면서 秦始皇에게 글을 써 올렸다.

옛날 秦목공이
秦나라 터전을 이룩한 것은
百里奚(백리해)와 騫叔(건숙) 덕분이며,
秦효공이
秦나라 國法을 세운 것은 상앙 덕분이며,
秦혜문왕이
聯橫策을 써서 合縱을 깨뜨린 것은
장의의 덕분이며,

秦소양왕이
遠交近攻으로써 六國의 우두머리가 된 것은 범수의 덕분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들은 한결같이 모두 他國 사람들입니다.

臣이 듣건대 泰山은
흙 한줌도 拒否하지 않았기 때문에 能히 그 높이를 이루었고,
바다는 작은 시냇물도 받아들였기에 能히 그 깊이를 이루었다고합니다.
그런데 王께서는 天下를 統合할 큰 뜻을 품으셨으면서
어찌하여 他國 사람들을 國境 밖으로 내 모는 것입니까?

大王께서는 天下를 하나로 統合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많은 他國人들이 他國으로 가서 計策을 올리면 어쩌려고 하십니까?
이들을 놓치면 大王은 人材를 求하고 싶어도 求하지 못할 것입니다.

李斯가 올린 名文의 글을 받아본 秦始皇은
황급히 朝廷으로 나가 左.右 臣下에게 命했다.

"追放令을 거두고 사람을 보내어 李斯를 데려오라!"
秦나라에 또한명의 人物이 登場하는 瞬間이었다.

이 때 부터 李斯에게 廷尉(사법을 주관하는 최고장관)벼슬을 내려
여불위를 代身하여 秦나라의 모든 政策을 管掌하게 된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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