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인 과 基督敎

勝者와 敗者 모두 죽다[29]

동천 2009. 9. 26. 13:23

     
    勝者와 敗者 모두 죽다[29]

      ★로마 제국 황제와 주교 사이에 벌어진 이 드라마는
      교회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전개됨으로써
      現世의 권력자에게 神의 힘을 과시한 "쑈"가 진행된 것이다.

      중세를 상징하는 사건의 하나라는
      <카노사의 굴욕>을 생각나게 하는 광경이었다.
      1,077년에 이탈리아 중부의 카노사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는 처지가 된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눈 속에 서 있었던
      일이 <카노사의 굴욕>으로
      알려진 사건인데 그 전주곡은
      700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어떻던 基督敎會史에 큰 영향을 끼쳤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5년 천수를 다하여
      두 아들에게 제국을 兩分하여 맏아들에게는 東로마 제국을,
      아직 10세밖에 안된 둘째아들에게는 西로마 제국을 맡기고 48세를
      일기로 죽게 되자 기독교회는 얼르고 뺨치는 격으로 대하였던 그에게
      콘스탄티누스 大帝한테만 인정했던 <大帝>라는 尊稱을 그에게도 주기로 결정한다.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죽은지 2년 뒤에 4세기 말에 기독교회 제일의 실력자
      <암브로시우스>는 67세의 나이로 밀라노에서 눈물짓는 신자들에 둘러싸여
      편안히 눈을 감았다.

      그는 23년동안 기독교회에 군림하며 기독교회의 기반이 된 것은
      모두 그가 조직한 것이었으며,민중의 소망을 채워주기 위하여 기독교도가
      본보기로 삼을 만한 사람을 <성인>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만들게 된것도 그가 한 일이다.
      일신교 세계에서 경배 대상이, 다신교 시대처럼 "수호신"이 아니라 "수호성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신교를 지키면서 민중의 소박한 소망도 만족시켜주는 멋진 제도를 창안 해 낸
      것이다. 그리하여 <성인>은 오늘날까지 계속 늘어나고 그 성인을 기리는 축일은 365일도
      모자라 1년중 하루를 성인 축제일로 정했으니 11월 1일 <만성절>이 바로 그것이며
      그는 스스로 만든 제도의 일원이 되어 역사상 그의 이름은 <성 암브로시우스>가 된다.


      그리스.로마 문명의 마지막 기수로서 고명한 성인과 논쟁을 붙은 것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심마쿠스는 경쟁자 암브로시우스가 죽은 지 5년 뒤에 생을 마쳤다고 하며
      그가 남긴 것이라고는 "카피톨리노 미술관"에 있는 비석 하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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