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

17. 司馬遷의 史記(17)

동천 2010. 2. 10. 10:48


司馬遷의 史記(17)


范 增

項良은 陳勝의 죽음이 확실하다는 情報를 얻고 설땅에서 各 副將들과 대책을 협의하고 있는데
거소 출신의 나이 70세 되는 范增이 項良을 찾아왔다.

그는 단 한번도 벼슬을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남의 허점을 찌르는 策略에 能한 사람이었다.

그는 項良에게 이렇게 말했다.

陳勝이 가장 먼저 起兵한 점에는 評價 해 줄만 합니다. 그러나 楚王의 후손을 王으로 세우지 않고, 스스로 王이 되었기 때문에 大義明分을 잃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데서 失敗한 것입니다.


項良은 范增의 말이 合理的이라 생각하여 楚나라 王室의 後孫 "孫心"을 王으로 옹립,
戰國時代 말년에 秦나라에 의해 모욕을 당한 끝에 죽은 懷王(회왕)을 기리기 위해 "懷王"이라 불렀다.

그리고 진영을 재상으로 임명하면서 領地로 5개 현을 주어 懷王과 함께 우이에 도읍을 정하도록 하였으며, 項良 자신은 이때부터 무신군이라 불렀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參考文軒 : 司馬遷의 史記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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