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

49. ■ 韓信의 背水陣 (49)

동천 2010. 2. 14. 17:39



■ 韓信의 背水陣

B.C. 204년 9月 下旬,
韓信은 3 萬 軍으로 魏나라를 평정하고 이어 代땅과 趙나라의 진여를
사로잡고 이어 燕나라 齊나라를 아우러는 劉邦의 東北方을 平安케 한 後,
軍士를 돌려 楚의 糧道를 끝어 項羽의 西進을 막겠다는 글을 올리게 된다.

이에 劉邦은 趙나라 事情에 밝은
"장이"에게 軍士 3萬을 주어 韓信에게로
보내면서 計劃한 대로 할 것을 승락한다.
韓信은 대땅의 "하열"을 죽이고 항복한 代兵을
거두어 中軍과 합쳐 趙나라를 치러 가려는 참에
갑자기 형양에서 漢王의 使者가 달려와 王命을
전한다.

"楚軍의 움직임이 급박해졌다.
項羽는 종리매에게 大軍을 주어 廣武山을 치게 하고
자신은 "요저"와 더불어 길을 돌아 敖倉(오창)으로 向하고 있다 한다.
大將軍은 급히 精兵을 이끌고 돌아와 "형양"을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韓信은 "조참"에게 정병 3만을 주어 "형양"으로 돌아가 대왕을 지키게 하는
한편 남은 軍士 3 萬을 이끌고 "장이"와 함께 애초 計劃한대로 趙나라 정벌에
나서게 된다.

당시의 趙나라 軍은 20 萬 大軍으로 쌍방의 軍事力은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戰鬪가 시작되기 직전 趙나라의 모사 李左車(이좌거)가
大將軍 진여에게 戰略을 귀띔했다.

兵力面에서 절대 우세지만, 兵力을 아껴 守備만 해야합니다.
저에게 3 萬 兵力만 주시면 좁고 험하기로 이름난 길목이 되는
정형길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敵 主力 後方의 치중대를 습격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우리 主力部隊가 달려 나오면 됩니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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