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遷의 史記

74. ■ 東陵侯 "召平" (74)

동천 2010. 2. 17. 16:11



■ 東陵侯 "召平"

秦나라 때 동능후를 지낸 적이 있는 召平이란 사람이 있었다.
"召平"은 秦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잃은 데다 집이 가난하여
장안성 동쪽에서 오이 農事를 짓고 살았다.
그런 그가 農事를 짓는 데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그가 기른 오이는 맛이
매우 좋아 사람들은 그의 옛 封號를 붙여 "東陵瓜(동능과)"라 부르며 별나게 여겼다.

진희가 모반을 일으켜 漢 高祖가 친히 大軍을 이끌고 토벌 중에 있을 때
呂后가 "소하"의 計策을 써서 韓信을 주살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劉邦은
소하를 漢나라의 相國으로 삼고 식읍 5千 戶를 더하면서 아울러 都尉
1명에 軍士 5 百名을 딸려 상국을 호위하게 하는 등 포상을 하자
소하와 가깝게 지내는 朝廷 大臣들과 많은 親知들이 소하를
찾아보고 그 일을 祝賀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런 祝賀 무드 속에 있는 소하를 찾은 召平은 난데없이 弔儀를 나타내자
소하가 그 까닭을 물었다.

내가 弔問을 한 것은 禍가 利로 부터
시작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皇帝께서는 밖에서 바람서리를 맞으시며
힘든 싸움을 하고 계시는데 그대는 안에서
지키며 화살과 돌이 쏟아지는 싸움터의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皇帝께서는 그대에게
俸地를 더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호위까지 붙여 주셨습니다.
이는 韓信이 방금 안에서 모반을 꾀한 터라 皇帝께서
그대까지 疑心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호위를 붙여 그대를 지키게 하는 것은 결코 그대를 寵愛해서가 아닙니다.
그대는 부디 봉지를 사양하여 받지 말고 집안의 私財를
모두 털어 皇帝의 戰費에 보태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皇帝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에 소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따랐고 劉邦은 과연 크게 기뻐하였다.

參考文軒: 司馬遷의 史記, 列局志 中에서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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