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133. 砥平里 戰鬪

동천 2011. 10. 29. 15:16

 

 


■133. 砥平里 戰鬪


▶1951년 1월 3일 서울을 재점령 후,
그의 한 달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하던
중공군 사령관 彭德懷는 2월 11일에야 이른바 전사에
피비린내 나는 기록으로 얼룩진 제4 차 공세를 하게 된다.

4차공세의 최종 목표는 중부전선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선 전체를 37도선 이남으로 일거에 밀어붙이는 것이었으므로
서부전선의 UN군이 후퇴하도록 압박을 가하기 위해서는 중부지역의
요충지인 지평리를 확보해야만 했다.


▶ 한편,
미 8군 사령관
Ridgway 장군의
입장에서는
삼마치고개 부근에서
적과 대치하던
국군 제8사단이
불과 4시간 만에
사단이 해체될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패배함으로써 전선 중앙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리자
지평리는 미 제9군단의
우익 방호를 위해 절대적
요충지로 반드시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적도 또한 이점을 노리고 군단 우측을 공격하기 위하여
군단 정면에 배치한 병력을 지평리로 이동시켜 공격을 해오면서
대한민국의 명운을 건 이 전투가 시작된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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