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戰爭秘史

■137.後 方

동천 2011. 10. 29. 15:25

■137.後 方



▶UN군의 도움으로 압록강까지 진격하여 통일이 눈앞에 펼쳐지는가
싶더니 중공군의 불법개입으로 또다시 수도 서울이 공산군 수중으로
들어가고 1,4후퇴의 비운을 맞아 절망하고 있는 가운데
엎친데 겹친격으로 51년 1월에 국민방위군사건,
2월의 거창 사건등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되고

지리산 과 소백산맥, 태백산맥 일대에서는 공산 게릴라의 준동으로
국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國民防衛軍은 戰爭初期 國土의 대부분이 점령당하였을 때
兵力 補充의 어려움을 겪은 터라 또다시 이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中共軍 및 朝鮮人民軍에 對抗하고자 제2국민병을 50萬 名으로
편성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國民防衛軍이다.

이 國民防衛軍의 初代 司令官을 軍에 對하여 一面識도 없는 씨름꾼인
대동청년단 단장 김윤근을 陸軍 准將에 任命 後 司令官으로 任命하고
副司令官에는 獨立運動家 出身 尹益憲을 大領으로 특별 임명하여
보임된다.

이렇게 편성된 국민방위군 고위 장교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
착복함으로써 1,4後退 무렵인 12月~2月 사이에 아사자, 동사자가
약 9萬에서 12萬 여명에 이르렀던 事件이 발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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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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