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折檻(부러진 난간)
漢 나라 成帝 때에는 槐里 縣令(=군수)을 지냈던 [朱雲]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朱 현령은 글을 올려 임금 뵙기를 청했다. 대신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말했다.
"지금의 조정대신은 위로 임금을 바르게 하지 못하고 아래로 백성들에게 보탬이 없으니 尸位素餐(자리만 지키며 봉록만 축낸다는 뜻) 이옵니다. 원컨데 신에게 尙方斬馬劍을 내려주시면 아첨하는 신하 한 명의 목을 베어 그 나머지를 힘쓰게 하겠나이다."
” 황제가 물었다. “그자가 누구인가?” 朱雲이 대답했다. “安昌侯 張禹입니다.” 황제가 크게 노하여 말했다. “미천한 신하가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비방하고 조정에서 황제의 스승을 욕보였으니, 그 죄는 사형으로 용서할 수 없다.” 왕이 격노해 끌고 가 감옥에 가두라고 하자, 그는 대궐의 난간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 서슬에 난간이 부러졌다. 그가 외쳤다.
"저야 地下에 가서 옛 忠臣 용봉. 비간과 더불어 놀면 그뿐이지만 폐하의 조정은 어찌한단 말입니까?"
뒤에 난간을 고치려 하자 왕이 말했다. "바꾸지 말고 그대로 수리하라. 바른 말하는 신하를 기념코자 한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장에 군수가 난입해서 장관의 목을 벨 칼을 달라고 외친 셈이다. 그래서 折檻[부러진 난간]이란 고사가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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