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晉武帝
群雄이 활거하던 三國時代 以後 중국대륙을 통일시킨 "사마염"을 晉武帝라 불린다
晉나라는 수도를 "낙양"에 두었던 전반 52年을 "西晉"이라하고 "남경"의 104년간을 "東晉"이라 부른다
어쨋던 황제가 된 "사마염"의 "초창기 정치는 밝고도 맑으며, "공명정대하게 펴 나갔다.
사마염은 신하들이 바친 "치두구" (꿩의 머리부분 가죽만으로 만든 당대 최고의 코트)를 선물로 받은 자리에서, 황제 스스로 신하들 앞에서 불태우며 사치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자세를 보였다.
그러던 그가 초심은 어디 가고 "대륙은 통일되었고,천하를 다스리는 황제가 무엇이 부족하여"치두구"를 불태우겠느냐" 며 점차 씀씀이가 커지며 사치와 향락에 빠지게 된다.
여자도 그렇다. 황제에게는 모름지기 1만 女體는 주어져야 마땅하다면서 방방곡곡 젊은 꽃같은 처녀를 모집하여 後園에 뿌렸다
당시 대륙의 人口는 1,600萬名. 男女老少를 제하면 혼자서 다 차지하였다는 얘기다.
"晉武帝"는 저녁마다 어느 후궁을 선택할가 그것이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해낸것이 양들이 끄는 수레를 타고 가다가 수레를 멈추는 곳이 황제의 품에 안기는 행운을 얻는 후궁이었다 한다. 어느 총명한 후궁은 확률 1/10,000의 어려운 난관을 감나무아래서 입을 벌리고 감떨어지기를 바라서야 되겠느냐며 수완을 썼다.
양들이 좋아하는 기호식이 소금과 대나무잎이라는 것을 알고, 그 후궁은 뜰에 대나무를 심고 집 앞에는 남모르게 소금을 뿌려 매일 수레를 멈추게하여 황제를 독식하게 된다.
서진의 지배계급은 9등급으로 나누어진 호족들이였다는데, 일단 관직에 임용되면 토지가 수여되고,세금이 면제되는 혜택을 누리는 "세습호족제"였다는데,,,,
황제가 사치와 향락에 빠져지내니 그 신하들과 호족들의 짓거리가 결국 서진을 망하게하는 요인이되고, 왕족끼리 죽고 죽이는 殺肉戰이 벌어진다.
흔히 요즘도 상인들 중에 초장 개시도 안했는데 시비를 거는 손님이 가고 나면 "에이 재수없다" 하며 소금을 뿌리는 데,,,,, 소금 뿌리는 의미는 재수없어 뿌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손님을 부르기 위한 것이라는 걸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소이다.
- 參考文軒 : 史馬遷의 史記 中에서 -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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