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인조반정과 崇明背金

동천 2016. 9. 4. 06:04

▣인조반정과 崇明背金


■ 동북 대륙에서 후금이 건국하여
명나라에 선전포고하고 연전연성으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을 즈음,
조선에서는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을 겪으며 불안정속에 있었다.

■1623년 3월 13일,
한 사람은 조선의 15대 임금 光海君,
다른 한 사람은 그의 조카 綾陽君,
조카는 숙부를 왕좌에서 끌어내림으로서
두 사람의 운명이 극과 극으로 갈리게 된다.
이날 밤 3시 무렵, 1천 4백여 명의 반란군이 창덕궁으로 들이닥쳤다.

광해군의 죄목을 10가지를 열거한 가운데

☞첫번째가 廢母殺弟,
즉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죽이고 母侯를 폐하였다는 점이었고,

☞두번째로는 외교문제로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明이 도와준
[再造之恩]을 잊지 못해 죽을 때까지 明이 있는 서쪽을 등지고
앉은 적이 없었는데,광해군은 배은망덕하여 천명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랑캐 후금을 도왔으며, 황제가 칙서를 내려도 구원병을 파견하지
않아 禮儀의 나라 朝鮮을 오랑캐와 禽獸로 만들었다"고 성토했다.

"오랑캐와 화친하고 명을 배신했기 때문에 광해군을 폐위시켰다는
崇明背金은 곧 후금과 대결의 길로 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조선은 후금과 맞설 군사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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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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