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選擇의 岐路에 서다

동천 2016. 9. 4. 06:56

▣選擇의 岐路에 서다

■ 1637년 1월 12일,
앞서 보낸 국서에 대한 회답이 없자
이를 타개하려고 최명길이 국서를 들고 또 청군 진영으로 갔다.
국서의 내용도 명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면서 공손하게 썼다.

"소방은 바다 구석에 위치하여
오직 詩書만 일삼았지 전쟁은 몰랐습니다.
약국이 강국에 복종하고 소국이 대국을 섬기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어찌 감히 대국과 맞서겠습니까?
잘못을 용서하고 스스로 새롭게 될 수 있도록 허락하신다면
대국을 받들고 자손 대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1637년 1월 17일, 홍타이지의 답서가 왔다.
그의 답서는 명나라를 천하로 보고 있는 조선의 인식을 문제 삼았다.

천하는 크고 나라는 많다.
너희를 구해준 것은 오직
명나라 하나뿐인데 너희는
어찌해서 천하를 운운 하는가?
명나라와 너희의 虛誕하고
망령됨이 끝이 없구나.
..........중략...........

네가 살고 싶으냐?
그러면 성에서 빨리 나와 항복하라!
네가 싸우고자 하느냐?
그러면 성에서 빨리 나와 한 번 겨뤄보자.
하늘이 처분을 내리실 것이다.


■조선은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살아남기 위해 [무조건 항복]을 선택할 것인가?
[전원 玉碎]를 각오하고 결전을 선택할 것인가?
벼랑 끝으로 몰린 남한산성은 종사의 운명을 결정할
최후의 선택을 앞에 두고 다시 술렁이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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