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江華城 慘狀

동천 2016. 9. 9. 20:22

▣江華城 慘狀

■청군에 의한 살육과 자살이 속출하는 와중에 왕세손이
탈출에 성공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왕세손은 인조의 손자이자 소현세자와 강빈의 아들이었다.
청군이 강화성으로 밀려들 때 강빈은 상민의 옷을 갈아입고
동생 姜文星과 金仁, 徐後行 등 다섯 명의 내관에게
원손을 맡겼고 원손은 우여곡절 끝에 교동을 거쳐
다른 섬으로 피신, 탈출에 성공했지만
항복 이후 볼모로 끌려갔던
아버지 소현세자를 따라
심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도르곤(사진)은
강화도에서 사로잡은
왕실과 고관들의 가족을
앞세워 남한산성의 저항의지를
꺾어놓을 계산을 하고 있었다.
강화도성이 점령된 지 9일이
되던 날의 정경은 처참했다.

청군은 포로들을
남한산성으로 끌고 가면서
대대적인 노략질을 저질렀다.

관청과 여염에 불을 지르고 반항하는 백성들을 도륙했다.
이날의 참상을 기록한 史書에는

-"시체는 쌓여 들판에 깔리고 피는 강물을 이루었다"
-"눈 위를 기어다니거나,죽거나"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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