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戰禍

동천 2016. 9. 10. 04:56

▣戰禍


■ 인조의 삼배구고두례로 상징되는 치욕적인 항복과 함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귀천을 막론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혹한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화친을 방해하여 전쟁을 불러왔다는 죄목으로 연행되는 삼학사,
경향 각지에서 청군에 붙잡힌 수십만의 被擄人 등,
그들은 청군의 엄중한 감시 속에 심양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그들 앞에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통 속에 끌려가는 사람이나,슬픔을 삼키며 그들을
보내는 사람이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곧바로 삼학사의 죽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삼학사 가운데 가장 연장자였던 洪翼漢은 당시 52세,
尹集은 32세,吳達濟는 29세였다.

斥和臣들은 삼학사 말고도
윤황,유철,이일상,유계,정온,조경 등이 있었지만
이 세사람이 [희생양]으로 낙점된 까닭은 무었일까?

그것은 홍타이지의 칭제건원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들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홍타이지의 僭越(참월)을 비난하고 주화신들을 성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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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 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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