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會盟圖
200 여년 동안 한번도 戰爭을 치룬 경험이 없어 無防備狀態에 있던 朝鮮軍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속절없이 敗하거나 도망치기에 바빴다.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將軍이 敗戰하여 전사할 즈음, 조정에서는 非常 國務會議가 열렸고 [정발 戰死,송상현 戰死, 박홍 逃走, 신립 戰死, 충주시민 참살] 보고되는 것 모두가 慘憺하였다. 이에 선조가 내린 決定은 "도망 가자"였다. 宣祖 實錄에 의하면 "1592년 음력 4월30일 새벽 2시경, 宣祖는 '융복'에 '주립'을 눌러쓴 차림으로 좌우의 부축을 받으며 창덕궁의 仁政殿에서 말에 올랐다. 도승지 이항복이 촛불을 잡고 앞을 引導할 뿐이었다. 종묘 각실의 인보(印譜)외의 의장은 모두 버렸다. 宣祖가 떠나자 亂民들이 크게 일어 먼저 공사 노비의 문적이 있는 자예원과 형조를 불태우자 경복궁 , 창덕궁, 창경궁의 세 궁궐이 일시에 모두 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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