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平會盟圖 ■ 13.丁酉再亂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강화조건으로 1.명의 황녀를 일본으로 보낼 것. 2.조선 8도중 4도를 일본에 할양 할 것. 3.조선의 왕자및 대신 12명을 인질로 보낼 것 등이었다. 명나라 심의겸은 이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질 리 없음을 알고 본국에 거짓보고를 했다. 명나라 조정에서는 심의겸의 보고를 토대로 1596년 사신을 파견,히데요시를 일본 왕으로 책봉하는 칙서와 금인을 전했다. ☞결국 강화회담은 결렬되고 1597년2월 부터 정유재란이 시작 된다. 히데요시는 임진왜란 실패요인을 2가지로 분석했다. ☞하나는. 의병[반항] 때문이고 ☞또 하나는 제해권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이순신 때문이다. 그가 버티고 있는 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 그런데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에 있는 칠천량 해협에에는 왕명에 불복한 죄로 이순신이 그곳에 없었다. 일군은 14만 대군으로 우군,좌군,수군,3군으로 편성,수륙양면으로 호남지역으로 집중했다. 우군은 [모리히데모토]가 이끄는 7만8천명으로 산천- 함양-전주 방향으로, 좌군은 [고니시유키나가]가 이끄는 5만6천명으로 구례-남원 방향으로, 수군은 [도도타카도라]가 이끄는 7천여명은 섬진강 방향으로 총 14만명 대병이었다. 1597년7월8일, 정유재란이 시작되고 죽도 앞바다에서 벌어진 첫 해전은 조선수군의 승리였다. 7월11일, 원균이 부산 출정을 미룬다하여 곤양에서 도원수 권율로 부터 곤장을 맞았다. 이에 분개한 원균은 한산도에 머물던 모든 수군을 이끌고 떠나 가덕도에 일시 상륙하자 매복에 걸려 400여명이 희생된다. 원균은 칠천량에 배를 정박한채 군세를 수습하려 하고 있었는데.... 7월16일 04:00시경,지친 함대가 잠시 머문 칠천량 해협으로 일본 수군이 기습,진격해 왔다. 하여 전라 수군통제사 원균, 전라 우수사 이억기가 이끄는 2만 수군이 전사하고 180여척의 조선 판옥선은 12척남고 모두 잃게 된다. 칠천량 해전에서 승기를 잡은 왜군은 수륙 양면작전으로 전라도를 향해 진격했다. 왜군은 섬진강에 상륙,남원으로 향했다. 왜군은 산도,들도,마을도 모두 불지르고 자식들 앞에서 부모를 칼로 죽이고 아이들은 묶어서 포로로 끌고 가는 지옥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전라도를 점령해서 그기에 사는 사람 모두를 죽여라. 그것이 첫번째 전쟁 목표였다. 의병이 일어난 것을 히데요시에 반항하는 것이고 이는 자신의 힘이 약해졌다고 생각하게 되므로 [전라도는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고. [수군 격파,전라도 점령] 이 2가지가 정유재란시 일본군의 목표였다. 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