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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官義僧 聯合軍의 淸州城 戰鬪

義兵抗爭史 ■ 8. 官義僧 聯合軍의 淸州城 戰鬪 明軍의 참전에 따라 長期籠城戰이 불가피함을 인식한 日軍은 군량을 조달하기 위해 湖南으로의 진출을 생각하게 되었고 [히치 스카 이에마사]가 지휘하는 倭 제5군 후방부대는 중간 거점으로 淸州를 설정, 6월 23일경에 淸州城을 점령하게 된다. 이에 忠淸道 방위 책임자인 巡察使 [尹國馨]은 防禦使 [이옥]과 [조방자], [尹慶祺]로 하여금 淸州城을 공략하게 하였으나 [이옥]이 지휘하는 官軍은 淸州城 공략에 실패하였다. 하여, [趙憲] 義兵將의 총지휘 하에 , 靈圭大師의 僧兵과 [朴春茂]의 淸州 義兵 그리고 연기현에 주둔하고 있는 [이옥]의 官軍 등이 合軍하여 倭軍에게 함락되었던 淸州城을 탈환하게 하였다. 이들 官義兵 合同軍은 淸州城을 탈환하기 위해 8월 1일 새벽..

義兵抗爭史 2020.04.14

■ 7. 官.義 聯合軍의 慶州城戰鬪

義兵抗爭史 ■ 7. 官.義 聯合軍의 慶州城戰鬪 왜적은 곽재우 의병군의 공격으로 형풍-창녕- 영산을 포기함에따라 낙동강 보급선을 상실하게 되었고, 영천성 마저 탈취당함으로써 안동 보급선이 차단 당하자 마지막 보급선인 양산-밀양-청도-대구-안동-문경-충주를 잇는 中路의 동측방을 보호하기 위해 경주성을 확보코자 심혈을 기우리고 있었다. 이를 위해 양산성을 수비하던 병력 중 정병 5백여명을 선발, 언양에 증파하여 경주성 부근의 의병소탕에 나서게 된다. 한편,경주에서 군사훈련을 하고 있던 경주인 [金虎]는 초유사 金誠一로부터 義兵都大將 명을 받고 8월 2일, 義兵1,400여명을 지휘하여 언양 방면으로 진군하여 증파되었던 왜적을 포위 공격하자 왜적들은 4분5열 되어 경주 본진으로 퇴패하였다. 이후,安康에 있던 慶尙..

義兵抗爭史 2020.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