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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鄭鳳壽]의 龍骨山城 戰鬪

義兵抗爭史 ■15. [鄭鳳壽]의 龍骨山城 戰鬪 후금군은 1627년 3월 3일, 강화가 성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明將 [모문용]을 체포한 다음 철군한다는 구실로 평양지역에 주둔, 군사들이 사방에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이같은 후금군의 만행에 관서지방 의병들은 자위의 전투를 할 수 밖에 없었고 조정에서도 의병활동을 은근히 지지하니 곳곳에서 전투가 계속되었고 그중 가장 치열했던 것이 龍骨山城戰鬪이다. 龍骨山城은 의주와 철산 중간지점에 위치한 높이 477m의 지형이 험준한 천연요새이었다. 당시 이 산성에는 鐵山,靈山,義州 等地의 피난민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前 청산-영산의 현감을 역임한 바 있는 [鄭鳳壽]를 의병장으로 추대했다. 추대된 [鄭鳳壽]는 4천여명의 의병을 모집하고 산성 출신 [金宗敏]을 中軍으로,..

義兵抗爭史 2020.04.17

□14-2. 丁卯胡亂時 湖南.湖西地方 義兵抗爭

義兵抗爭史 □14-2. 丁卯胡亂時 湖南.湖西地方 義兵抗爭 앞서 와 같은 亂中에 各地에서 義兵이 蜂起하여 後金軍과 치열한 전투를 전개하여 비록 불리한 戰局을 好轉시키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였지만 강화 성립 후까지도 계속되었다. 특기할 의병 활동은 1627년 1월 19일, 兩湖號召使 [호남, 호서지방 병력 모집관]으로 임명된 前行護軍 [金長生]을 중심으로 의병이 조직되었다. 80세 高齡인 그는 號召使 諭旨와 印信을 받자 불편한 몸을 이끌고 各地에 檄文을 보내 의병 모집에 나선다. 하여, [金長生]은 前府使 [宋興周]를 副使로, 前持平 [尹전]을 從事官으로 삼고 회덕, 광주, 무창, 고창, 태인, 전주, 남원, 나주, 김제, 영광, 고산, 장성, 부안, 보령, 연산 등 各邑에 모집원을 두어 의병을 모으는 한..

義兵抗爭史 2020.04.17

■ 관서지방의병 활동

義兵抗爭史 ■14-1. 정묘호란 시 關西地方 義兵抗爭 인조반정 후 집권한 서인 정권은 친명배금 정책을 내세웠는데... 후금은 명나라를 정벌하기 앞서 조선을 정벌함으로써 후환을 없이하고 조선과의 通交로 무역상의 이득을 취함으로써 자국의 부족한 물자를 보충하려 하였다. 하여,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태종은 1627년 1월 13일, 그의 從兄 [阿敏]을 司令官으로 삼아 3만 명의 병력으로 조선을 침공하게 했다. 한편, 조선은 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인 데다 인조반정 세력은 정권 안정을 위한 都城防衛와 西北邊防衛의 강화가 중요 현안이었다. 하여, [張晩]을 都元帥로 삼아 평양에 본영을 설치케 하고 [李适]을 平安兵使 兼 副元帥로 삼아 寧邊에 駐在하면서 西北邊을 방어토록 하였다. 그런데 仁祖 2년 ..

義兵抗爭史 2020.04.17